인간 유전체 해독 경쟁을 이끌고 합성 생물학의 문을 연 존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79세로 별세했다. 그가 설립한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는 벤터가 최근 암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겨 지난달 29일 숨졌다고 밝혔다.
벤터가 과학계의 논쟁적 인물로 처음 떠오른 때는 1991년 NIH 재직 시절이었다. 그는 수천 개의 인간 유전자 조각을 빠르게 읽어내는 방법을 개발했고, NIH는 이를 특허로 출원하려 했다. 그러자 "기능도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 정보에 재산권을 붙이려 한다"는 비판이 과학계에서 쏟아졌다. 연구를 주도한 벤터는 유전체 상업화 논란의 중심에 서며 과학계의 이단아로 불렸다.
벤터는 1995년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균의 전체 게놈을 처음으로 해독하며 세균 등 생물 유전체를 읽는 시대를 열었다. 이후 '셀레라 지노믹스'를 공동 창업한 그는 미국·영국 등 각국 연구진이 참여해 인간 유전자의 전체 설계도를 해독하려던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경쟁했다.
2000년에는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공 주도 HGP 연구팀과 함께 인간 게놈 초안을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세부 연구 결과는 HGP 연구팀이 네이처에, 벤터의 회사 셀레라는 사이언스에 각각 발표했다. 셀레라가 해독에 사용한 익명의 게놈 제공자 중 한 명이 벤터 자신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벤터의 도전은 유전체 해독에 머물지 않고 '인공 생명체'로 나아갔다. 2010년 그는 세계 최초로 화학적으로 합성된 게놈을 세균 세포에 이식해 스스로 복제하는 이른바 '합성 생명체(Synthia)'를 만들어냈다. 다만 완전히 무(無)에서 생명체를 만든 것은 아니어서 인공 생명체라는 표현에는 과학계에서도 이견이 있다. 이를 계기로 벤터는 '합성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윤리적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는 2016년에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유전자를 최소한으로 줄인 '최소 합성 세포'를 만들었고, 2021년에는 스스로 분열하고 복제하는 기능까지 갖춘 진화된 모델을 선보였다.
생전에 벤터는 베트남전 해군 의무병으로 복무하며 부상병과 사망자를 지켜본 경험을 계기로 의학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1975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생리학·약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국가과학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생명의 언어로 불리는 유전 정보를 해독하고, 설계·합성해 새로운 생명을 빚으려 한 그는 이제 생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