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교과서에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흔히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함께 설명된다. 하지만 고대 DNA를 분석했더니, 북유럽계 집단이 특정 시기에 대규모로 몰려온 게 아니라 멸망 전부터 로마 변경지대에 거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서로마가 멸망하자 이들이 로마계 주민과 빠르게 섞였다는 것이다.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대 요아힘 부르거 교수팀은 5~7세기 독일 바이에른주와 헤센주 일대 묘지에서 나온 유골 258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를 2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 대상은 초기 중세 유럽에서 나타난 '열상묘' 유적의 인골이다. 열상묘는 여러 무덤을 줄지어 배치하고, 시신과 함께 장신구·무기·의복 같은 부장품을 넣는 매장 방식이다.
◇'침공'전 이미 국경 안에 있었다
연구팀이 주목한 곳은 로마 제국의 북방 변경지대다. 로마는 당시 게르만계 세력의 침입과 소요에 대비해 이 일대에 군사 기지를 세웠다. 이곳에는 제국 각지에서 온 군인과 민간인, 북유럽과 발칸, 아시아 등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 살았다.
유전체 분석 결과, 북유럽계 사람들은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갑자기 대규모로 밀려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4세기 말부터 소규모 친족 집단이나 개인 단위로 남하해 로마 변경지대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농업 노동자 등 낮은 계층 주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제국이 유지되던 시기에는 이들이 로마계 주민과 유전적으로 구분되는 집단을 이뤘다. 이주민들은 주로 자기 집단 안에서 결혼했고, 북유럽계 유전적 특징을 오래 유지했다. 로마 질서 안에서 살았지만, 완전히 섞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연구진은 당시 로마 제국에서 로마계 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혼인이 법적·사회적으로 제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로마 질서 무너지자 혼인 장벽 낮아졌다
5세기 후반 서로마의 행정·군사 질서가 무너지면서 독일 남부 변경지대 주민들의 유전적 구성도 빠르게 바뀌었다. 연구진은 혼인 제한과 사회적 경계가 약해지면서 로마계 군인·도시민과 북유럽계 이주민 사이의 결혼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로마 멸망 이후 유럽이 야만족의 대규모 침공으로 한꺼번에 교체됐다'는 식의 단순한 설명과는 다르다. 연구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흔적은 확인했지만, 거대한 부족 집단이나 단일 민족 집단이 한꺼번에 내려온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동은 대체로 가족 단위, 친족 단위, 때로는 개인 단위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부르거 교수는 "제국 붕괴 이후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한 이동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서로마 멸망 이전 여러 세대에 걸쳐 이미 시작된 흐름이었다"며 "대규모 야만족 침공이라는 전통적 서사와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DNA가 보여준 중세 초기의 삶
유전체 분석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도 보여줬다. 연구 대상 집단의 기대수명은 여성 약 40세, 남성 약 43세였다. 영아 사망률도 높았다. 10세 이전에 부모 중 한 명 이상을 잃은 아이가 전체의 약 4분의 1에 달했다고 한다.
가족 구조에서는 후기 고대 기독교 규범의 흔적이 확인됐다. 당시 기독교는 이미 로마 제국의 국교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분석 결과 가족은 일부일처제 중심의 핵가족 형태였고, 과부가 남편의 친족 안에서 재혼한 흔적은 거의 없었다. 사촌 간 결혼 같은 가까운 근친혼도 엄격히 제한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