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하던 오팔 샌디(오른쪽)가 유전자 치료제로 거의 정상에 가깝게 들을 수 있게 됐다. /Cambridge University Hospitals NHS Foundation Trust

영국 옥스퍼드셔에 사는 오팔 샌디(4)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가 없는 세상을 살았다. 오토페린(OTOF) 유전자 돌연변이로 내이(內耳)의 신호가 뇌에 닿지 않는 병이었다. 샌디는 생후 11개월이던 2023년 9월, 케임브리지 애든브룩스 병원 의료진이 달팽이관에 유전자 치료제를 주사했다. 20분도 걸리지 않는 시술이었다. 4주 뒤 오팔은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6개월 즈음엔 속삭임 같은 작은 소리도 거의 정상에 가깝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어머니 조 샌디는 "청력이 거의 정상 수준이라는 확인을 받고 가족 모두가 너무 기뻐했다"고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3일(현지 시각) 샌디를 들을 수 있게 한 치료제를 세계 최초 유전성 난청 유전자 치료제로 승인했다. 개발사인 리제네론(Regeneron)은 미국 내 치료가 필요한 모든 아동에게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참가자 80%, 청력 개선

이번에 FDA 승인을 받은 리제네론의 '오타르메니(Otarmeni)'는 OTOF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 난청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다. OTOF 유전자는 달팽이관의 유모세포(有毛細胞)가 소리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데 필수적인 단백질 '오토페를린(otoferlin)'을 만든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신호 자체가 뇌에 닿지 않는다. 전선은 있는데 전류가 흐르지 않는 상태로 비유할 수 있다.

치료 원리는 복잡하지 않다. 정상 OTOF 유전자를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에 실어 달팽이관에 한 차례 주사한다. 정상 유전자가 자리를 잡으면 달팽이관 유모세포가 기능을 되찾고, 끊겼던 신호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FDA 승인의 근거가 된 임상시험에는 생후 10개월~16세 소아·청소년 20명이 참가했다. 이 중 80%(16명)가 청력이 개선됐다. 장기 추적에서는 42%가 속삭임까지 들을 수 있는 정상 청력을 회복했다. 임상 시험에서 생후 13개월에 오타르메니를 주사받은 아기도 이후 청력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수백만 달러 치료제를 무료로

리제네론은 오타르메니의 정가를 책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무료 공급을 선언했다. 대부분의 유전자 치료제가 100만달러(약 14억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리제네론은 "가능한 한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타르메니의 적응증은 어린이에 한정되지 않으며, OTOF 유전자 변이로 인한 중증·고도 감각신경성 난청을 가진 성인도 대상이다. 일라이 릴리와 프랑스·중국 기업들도 동일 표적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미·중 공동 연구팀은 환자 42명(1~32세)을 대상으로 최장 2.5년 추적한 결과, 90%에서 청력 개선이 지속됐다는 결과를 최근 네이처에 발표했다.

◇다음 표적은 'GJB2'… 150개 유전자 남아

FDA는 이번 승인이 유전성 난청 치료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밝혔다. 이번 치료제 임상에 연구자로 참여한 미국 보스턴 어린이병원 엘리엇 쉬어러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난청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150개가 넘는다"며 "유전성 난청 교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했다.

다음 표적은 유전성 선천성 난청의 대표적 원인인 GJB2 유전자 변이다. 다만 이 경우엔 달팽이관 세포 자체가 손상되기 때문에 오토페린보다 치료가 복잡하다. 프랑스, 미국 연구팀은 올해 안에 GJB2 관련 난청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제의 첫 임상시험을 추진한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