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 속 거대 괴수인 '크라켄' 상상도. /챗GPT

북유럽 전설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 '크라켄'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룡이 육지를 지배하던 백악기에 바다에선 몸길이가 6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거대 문어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다는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대 이바 야스히로 교수팀은 약 1억~7200만 년 전 백악기 지층에서 발굴한 문어 턱뼈 화석 27개를 분석한 결과를 2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화석은 일본과 캐나다 밴쿠버섬에서 나왔다. 문어는 몸 전체가 물렁물렁한 연체동물이라 화석이 남기 어렵다. 딱딱한 키틴질로 된 턱뼈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연구팀은 이 턱뼈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1억 년 전 바다의 먹이사슬을 복원해냈다.

◇바위 속 화석, AI가 꺼냈다

이번에 분석한 27개 화석 중 12개는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들이다. 바위 속에 파묻혀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연구팀은 첨단 스캐닝 장비에 AI 기반 '디지털 화석 채굴' 기술을 접목해 돌 속에 숨은 형체를 잡아냈다. 망치와 끌 대신 알고리즘이 화석을 캐낸 셈이다.

분석 결과 백악기 바다에는 두 종의 문어가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나나이모테우티스 하가르티'가 문제의 '거대 문어'다. 현생 긴몸통 문어의 턱뼈·몸길이 비율을 적용해 역추산하니, 전체 길이가 6.6~18.6m로 나왔다. 연구진은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무척추동물 중 하나"라고 했다. 오늘날 몸길이 12m를 넘는 대왕오징어보다도 최대 1.5배가 큰 셈이다.

백악기 지층에서 발굴한 고대 문어의 턱뼈 화석 일부. /훗카이도대

◇"바다의 범고래"…턱으로 껍데기를 부쉈다

연구진은 이 문어에 대해 "무척추동물계의 범고래이자 백상아리였을 것"이라며 "크고 영리하며, 고도로 효율적인 최상위 포식자"라고 설명했다. 사냥법도 추정할 수 있었다. 턱뼈에 단단한 물질을 반복적으로 씹은 마모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조개류, 암모나이트, 갑각류, 물고기 등의 껍데기와 뼈를 턱으로 으깨 먹은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처럼 긴 촉수 두 개로 먹이를 낚는 방식이 아니라, 팔 여덟 개를 모두 동원해 먹이를 움켜쥔 뒤 강력한 턱으로 처리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호주 플린더스대 존 롱 교수는 "백악기 바다엔 거대 상어, 해양 파충류, 암모나이트까지 대형 포식자가 바글바글했다"며 "그 바다의 꼭대기에 거대 문어가 있었다는 건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발견"이라고 했다.

◇오른손잡이 문어?…1억 년 전 '지능'의 흔적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발견은 턱뼈의 좌우 마모가 균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쪽을 더 많이 쓰는 '편측 우세' 현상, 쉽게 말해 오른손잡이·왼손잡이가 있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젓가락을 한쪽 손으로만 드는 것처럼, 이 문어도 먹이를 처리할 때 선호하는 쪽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편측 우세는 뇌가 좌우 기능을 분화시킬 만큼 고도화됐을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1억 년 전 조상 문어가 이미 상당한 지능을 갖추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현생 문어도 병뚜껑을 열고 미로를 통과할 정도로 영리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고대 문어는 신체적으로 강력했을 뿐 아니라 고유의 발달한 행동 패턴을 가졌다는 뜻"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