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80회 운영위원회를 열고 '2027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은 정부가 다음 연도 연구개발(R&D) 예산을 편성할 때 적용하는 기본 지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토대로 각 부처의 R&D 사업 예산 요구와 정부 전체의 R&D 예산 배분·조정 방향을 정하게 된다.
정부는 전략기술과 주력산업 경쟁력 확보에 투자 우선순위를 두는 한편, 연구현장 체감도를 높이는 제도 개편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인규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제는 R&D 투자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이어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AI·바이오·양자 집중… "인프라 넘어 활용·실증으로"
정부는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공지능(AI)과 첨단바이오, 양자, 우주·항공·해양 등 전략기술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기로 했다. AI의 경우 국민 활용 확산과 산업 전반의 전환을 함께 추진하고, 국방 분야에서는 민간 첨단 기술의 신속한 적용을 통해 방산 경쟁력과 안보 역량을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사이버보안과 소재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내년 R&D의 차별점으로 인프라 확충에서 적용과 활용, 실증 중심으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이재흔 과기정통부 연구개발투자심의국장은 간담회에서 "AI는 지금까지 인프라 확충에 역점을 둬 왔다면 내년부터는 적용과 활용이 본격화되는 시기"라며 "전 분야에서 AI를 접목해 연구의 생산성을 높이고, 하지 못했던 연구까지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와 탄소중립 분야에서는 단위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실증과 확산까지 이어지는 지원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주력산업과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도 주요 방향으로 제시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로봇·제조, 차세대 통신, 첨단모빌리티, 이차전지 등 분야에서 민관 역할 분담을 전제로 정부는 장기적이고 고위험 성격의 기술 확보에 집중하기로 했다. 특히 화합물·전력반도체, 첨단 패키징, AI 반도체 등 전략성이 큰 분야에 대한 지원이 강조됐다.
국민 생활과 맞닿아 있는 R&D 투자도 확대된다. 정부는 홍수와 산불 등 재난안전 대응 기술을 현장 문제 해결 중심으로 추진하고, 공공조달과 연계해 성과가 현장에 빠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저출생·고령화 대응, 생활환경 개선 등 사회문제 해결형 R&D도 계속 추진한다.
이와 함께 한국이 주도할 필요가 있는 분야의 이른바 'K-Science' R&D도 새롭게 제시됐다. 박인규 혁신본부장은 "K-사이언스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투자 방향"이라며 "한국 과학자가 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 과학자가 하기 힘들거나 관심을 두기 어려운 분야, 한국만의 데이터와 특성을 바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연구를 뜻한다"고 말했다.
◇ 연구현장 부담 줄이고 지역·사업화 키운다
연구현장 기반을 강화하는 방안도 이번 투자 방향에 담겼다. 기초연구 분야에서는 과제 수를 늘리고 공동 인력·인프라 활용을 높이는 한편, 젊은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추진한다. 대학에는 기관 단위 지원 방식인 블록펀딩 도입 검토가 포함됐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의 단계적 폐지와 함께 임무 중심 연구체계 전환, 인재 확보와 처우 개선이 함께 고려된다.
이와 관련해 혁신본부는 올해부터 연구행정 부담 완화와 연구비 집행 자율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에 등록된 각종 행정서식을 정비해 중복 서식을 줄이고, 정부 데이터와 연계해 제출이 필요 없는 서류를 축소할 방침이다. 직접비 일부와 간접비 전반에 대해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해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할 계획이다. 여러 연구지원 시스템을 하나의 로그인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연구24′ 서비스도 5~6월 중 공개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2027년부터는 정부 R&D 투자시스템 개편도 함께 진행된다. 예산 배분 과정에서는 성과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해 재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필요 사업 중심으로 재구조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예비타당성조사 폐지 이후 대형 신규 R&D 사업은 연구형과 구축형으로 나눠 관리하고, 정부는 R&D 예산 심의 과정에도 AI를 도입할 방침이다.
중소·벤처기업과 지역을 혁신의 핵심 주체로 키우겠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정부는 기술이전과 사업화, 스케일업을 위해 부처 간 연계를 확대하고 청년창업 및 공공기술 사업화 투자도 늘릴 예정이다. 지역의 경우 지방정부가 직접 R&D를 기획하고 성과에 책임을 지는 '지역 자율형 R&D'를 확대하고, 지역 과학기술 거버넌스 개편도 추진한다.
박인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정부는 무너진 과학기술 생태계를 복원하고 과감한 R&D 투자로 AI 대전환 등 혁신의 토대를 마련해왔다"며 "정부 R&D 사업을 수행하는 30여 개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 역량을 총결집해 결실을 맺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