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의 머크 본사 정문.

미국계 글로벌 제약사 머크가 중국 제약사의 비만 치료 신약 물질을 사들이며 경구용(먹는 약) 비만 치료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GLP-1(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 계열 블록버스터급 비만 치료제를 내놓은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이들뿐 아니라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대형 국제 제약사들도 앞서 경구용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나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머크는 지난 18일 중국의 한소제약과 최대 20억달러(약 2조9000억 원)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신약 후보 물질 ‘HS-10535′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머크는 선수금으로 1억1200만달러를 지급하고 앞으로 신약 개발이 진행되는 단계에 따라 로열티를 더 지급한다. 이번 계약으로 머크는 이 후보 물질을 신약으로 개발하고 향후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제조·판매할 수 있게 됐다. 한소제약은 중국 내 상업화 권리를 보유한다.

한소제약이 기술 수출에 성공한 신약 후보 물질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같은 GLP-1 계열 치료제다. GLP-1은 음식을 먹었을 때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유사체로, 혈당 조절에 필요한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북미와 유럽 등의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는 모두 주 1회 투약하는 주사 방식 약물이다. 현재 비만 치료제 신약 개발의 초점은 월 1회 주사 등으로 투약 간격을 더욱 늘리거나, 먹는 약처럼 투약 방식을 간편하게 만드는 등 편의성을 개선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이번 머크의 후보 물질 기술 이전은 다소 늦은 진입이라는 평도 나온다. 이미 노보노디스크가 GLP-1 계열의 경구형 당뇨 치료제 ‘리벨서스’를 시장에 내놨고, 일라이릴리도 먹는 약 방식의 비만 치료제 임상 3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슈 또한 지난 7월 먹는 약 형태의 비만 치료제 임상 1상 시험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고, 화이자도 1일 1회 복용하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도 한미약품과 대웅제약, 동아에스티 등이 투약 주기를 월 1회로 늘리거나, 경구 복용할 수 있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