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마약 사범은 2만7611명에 달한다. 전년도 1만8395명에서 약 50%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마약사범의 수가 검거 건수의 20~40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국내 마약사범의 수는 80만명을 넘을 수도 있다.
수사기관은 마약을 제조·유통·사용하는 마약사범 모두를 같은 범죄자로 보지만, 의료계는 마약 사용자를 ‘마약 중독 환자’로 본다. 마약 사용이 범죄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동시에 질환을 앓고 있는 치료의 대상이라는 관점이다. 미 국립보건원(NIH)도 마약 중독을 “강박적으로 약물을 찾고 사용하는 특징을 가진 만성재발장애와 보상과 스트레스에 관한 뇌 회로의 기능적 이상을 가진 뇌장애”라고 설명한다.
마약 중독이 질병이라면 치료할 방법은 있을까. 송재준 고려대구로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마약 치료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다. 그는 의사이자 연구자인 동시에 2018년 헬스케어 스타트업 ‘뉴라이브’를 창업한 기업가이기도 하다.
◇미주신경 자극해 이명 증상 치료
송 교수에게 마약 중독 치료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묻자 “마약 중독 치료는 환자가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이고, 의료진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며 “이비인후과 교수로서 이명(耳鳴) 환자를 대할 때 느꼈던 안타까움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도 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고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명이란 실제로 외부에서 나는 소리가 없음에도 머리나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증상이다. 송 교수는 2018년 전자약 업체인 뉴라이브를 설립했다. 전자약은 뇌를 자극해 질병을 치료하는 장치를 말한다. 목표 질병은 이명이었다. 건강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 수면 장애를 유발하며 심한 경우 난청이나 어지럼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는 “이명은 이비인후과에서 다루는 질병 중 대표적인 난치병”이라며 “약이 거의 듣지 않고 행동치료로 이명 증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줄여주는 치료가 전부”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뇌와 장기 사이를 오가며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미주신경(迷走神經)을 자극해 치료하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전기자극술이다. 약한 전류를 흘려 뇌를 자극해 신경을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해 뇌질환을 치료한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이명과 퇴행성 뇌질환 치료용 전자약 ‘소리클’이다. 소리클은 뇌 신경 12쌍 중 10번째에 해당하는 미주신경을 자극해 청각과 관련한 신경을 자극한다.
뉴라이브는 소리클과 함께 행동 치료를 돕는 디지털 치료기기인 앱(app·응용프로그램) ‘소리클리어’의 품목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또 스트레스 관리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디지털 헬스케어 장치 ‘힐라온’을 판매 중이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학적으로 효과를 검증해 질병의 예방, 치료, 관리에 쓰이는 소프트웨어 기반 의료기기이며, 디지털 헬스케어 장치는 질병 치료용 의료기기가 아닌 공산품에 속한다.
◇뇌 자극해 마약 중독 금단 증상 줄여
송 교수는 최근 마약 중독 치료에도 관심을 갖고 한창 연구 중이다. 마약 중독은 일반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가 다루는 질병이다. 이비인후과 전문가인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벗어났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뉴라이브가 가진 미주신경 자극술로 마약 중독을 치료한다는 해외 제품을 봤다”며 “이를 계기로 마약 중독 치료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독은 의학적으로 금단 증상과 갈망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가령 알코올 중독 환자가 술을 끊으면 손이 떨리는 금단증상을 느끼고 술을 마시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미주신경 자극은 이 중 금단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송 교수는 “마약 중독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금단 증상으로 통증, 심계항진(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 불안감으로 고통 받지만, 의사들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환자가 금단 증상을 극복할 방법을 물어보면 산책을 권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전기자극술은 이미 해외에서 마약 중독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피에 전극을 붙여 전류를 흘리는 경두개직류전기자극(tDCS)과 자기장으로 뇌 신경을 활성화하는 경두개자기자극술(rTMS)이 대표적이다. 두 기술 모두 이명 치료에도 쓰고 있다.
뉴라이브는 뇌를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귀를 통해 전류를 흘리는 외이 미주신경 자극 기술을 갖고 있다. 소리와 전기를 사용해 미주신경을 효과적으로 활성화하는 기술이다. 미국의 바이오 기업 스파크 바이오메디컬이 개발한 마약 중독 전자약인 스페로우 어센트도 같은 방식을 쓰고 있다.
◇의사로서 책임감이 전자약 개발 동력
국내에서 마약 중독 전자약이 필요한 이유는 마약 중독 치료제를 국내에서 처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마약 중독 치료제가 있지만,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다. 송 교수는 “한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약 청정국 지위를 갖고 있어 치료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며 “그러다 보니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한 인프라(기반 시설)도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 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지난해 미국 제약사 이머전트가 개발한 마약 중독 치료제 ‘나르칸(NARCAN)’의 수입을 추진했다. FDA가 승인한 마약 치료제가 이미 있어도 전자약을 개발하는 이유를 송 교수에게 묻자 ‘책임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약 치료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마약 중독 치료는 의사도, 환자도 모두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사업가이기 이전에 의사로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송 교수는 “이명 환자만 해도 우울증이나 불면증 환자에 비해 그 수가 턱없이 적다”며 “그러다 보니 수익이 나지 않아 치료제나 치료법이 나오지 않아 전자약 개발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은 미충족 수요를 찾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며 “다른 사업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