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전통적으로 한 해의 수확을 기념하고,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24절기 중 입추에서 입동까지 이어지는 가을의 한가운데란 의미에서 ‘중추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100년 뒤에는 더 이상 추석이 가을의 한가운데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음력 8월 15일을 추석으로 하면 100년 뒤에는 가을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여름의 한가운데일 가능성이 크다. 중추철이 아니라 중하절이 되는 셈이다.
지난 12일 기상청은 추석 연휴에 평년보다 섭씨 5도 내외 높은 무더운 날씨가 지속된다고 밝혔다. 연휴 기간 비가 내리는 시간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30도 이상의 기온을 기록하고, 밤에도 25도 내외의 열대야가 나타나는 지역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후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계절과 절기가 실제 날씨와 맞지 않는 현상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100년 전 농경 사회 중심이었던 한국에서 음력 8월 15일은 벼와 곡식, 과일을 수확하는 때였다. 20세기 초반의 기후는 비교적 예측 가능하고 계절적인 변화가 뚜렷해 절기나 추석에 맞춰 수확을 기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기후변화로 추석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올해 추석은 열대야와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여전히 여름 날씨여서 수확을 하는 추석괴 맞지 않는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절기의 기후가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절기의 기온이 낮게 0.3도에서 최대 4.1도까지 올랐다. 24개 절기 중에서도 겨울과 봄에 해당하는 절기의 기온 상승 폭이 높았고, 추운 절기로 꼽히는 소한과 대한도 영상 기온을 보이기도 했다. 원래 대한은 가장 큰 추위를 나타내는 절기였으나,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추운 절기는 그보다 앞선 소한으로 바뀌었다.
특히 올해는 절기와 실제 날씨의 차이가 컸다. 대표적인 사례가 처서다. 처서는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시점으로 여겨져 ‘처서 매직’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처서 이후에도 무더위가 이어지며 의미가 약화됐다. 지난 10일에는 백로가 지난 뒤에도 서울 전역에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처서에 이어 가을의 기운이 완연해진다는 절기 ‘백로’도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올해는 유달리 계절이 없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며 “지구 온난화에 자연적인 요인들이 겹치면서 한반도 주변 바닷물 온도가 높아져 더위가 길게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여름이 더 길어지면서 가을의 한가운데를 의미하는 중추절은 음력 8월 15일보다 뒤로 미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국립기상과학원은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 보고서’를 통해 1912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6년 동안 봄은 13일, 여름은 10일 빨라지고, 가을은 9일, 겨울은 5일이 늦어졌다고 밝혔다. 계절 지속일은 여름은 98일에서 117일로 19일 길어졌고, 겨울은 109일에서 91일로 18일 짧아졌다. 이 속도라면 100년 뒤 가을은 지금보다 일주일은 늦게 찾아오고 더 빨리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극한 기후가 나타나면서 추석 때 많은 수확을 기대하기도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평균기온 변화량은 10년마다 0.18도 상승하면서 고온과 관련된 극한기후지수도 증가했다. 극한기후지수는 여름일수와 열대야일수, 폭염일수, 온난일, 강수량, 강수일수를 포함한 21개 요소를 고려해 매기는 일종의 점수다. 고온 현상이나 가뭄, 장마와 같은 이상 기후가 발생하면 작물의 성장이 늦어지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김백민 교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미래 기후를 예측한 많은 연구 결과에서 앞으로도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질 거라 예상한다”며 “온실가스를 계속해서 배출하면 온난화가 심해지고, 따라서 절기의 변화가 더 커질 거라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