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인 퓩스 미국 록펠러대 석좌교수./미 프린스턴대

“과학에는 해답이 없다. 불필요한 결과들이 나올 수 있지만 획기적인 발견을 할 수도 있는 것이 과학이다. 호기심과 도전, 긍정적인 사고가 있다면 결과를 낼 수 있다.”

일레인 퓩스 미국 록펠러대 석좌교수(74)는 지난 31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린 ‘서경배과학재단(SUHF) 심포지엄 2024′에 기조연사로 나와 50년이 넘는 자신의 연구 여정을 요약하며 이렇게 말했다.

퓩스 교수는 피부줄기세포와 재생의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다. 2009년 피부줄기세포가 모발과 피부를 생성하거나 재생하는 과정을 연구한 공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과학메달을 받았다. 국가과학메달 수상자 중에는 리처드 파인만, 폴 디락 같이 노벨 수상자도 많다. 퓩스 교수는 아직 노벨상을 받지 않았지만 예비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스커상’과 ‘루이자 그로스 호로비츠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1972년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프린스턴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는 시카고대 교수로 활동하다가 2002년 록펠러대로 자리를 옮겼다. 퓩스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어떻게 과학자의 길을 선택했는지, 나중에 왜 연구주제를 줄기세포로 바꿨는지 설명했다.

퓩스 교수 가족은 어머니를 빼고 모두 과학자다. 아버지는 지질학자, 언니는 신경과학자다. 삼촌과 이모 역시 과학자다.퓩스 교수는 “아버지가 연구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나비도 잡으러 다니면서 자연스레 과학자의 길을 꿈꾸게 됐다”며 “가족들은 일찍이 과학적 열정을 키우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리화학과 생화학을 오가며 공부하다 한 세미나에서 만난 교수 덕분에 줄기세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오랜 연구 끝에 피부줄기세포가 외부 자극을 어떻게 기억하고 반응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밝혔다. 퓩스 교수는 “피부만큼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는 장기는 없다”며 “아토피나 건선과 같이 자극에 의해 시작되는 질환들은 재발하기 쉬운데, 피부줄기세포가 자체적으로 유전체에 흔적을 만들어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줄기세포의 기억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기억을 바꿔 만성 염증이나 암을 치료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일레인 퓩스 미국 록펠러대 석좌교수가 양한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서경배과학재단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까지 다양했다. 퓩스 교수는 지금까지 걸어온 연구 여정을 회상하며 한국 청중들에게 자신이 몸소 배웠던 것을 전하듯 세 가지 교훈을 말했다.

퓩스 교수의 첫 번째 교훈은 과학이 때로는 실패와 좌절로 가득 찰 수 있지만, 열정을 좇아 도전하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열정을 느끼는 분야를 찾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퓩스 교수는 “과학적 탐구를 통해 예상치 못한 발견이 이뤄질 수 있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긍정적인 사고와 끈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퓩스 교수는 “대학에서 들었던 물리 강의는 수강생 200명 중 여성이 단 3명이었을 정도로 당시 과학은 남성 판이었다”며 “한 교수가 과학에는 여성의 자리가 없다고 했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과학 연구에서 마주하는 많은 장벽과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퓩스 교수는 연구 외에 여행이나 예술, 스포츠와 같은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취미로 세계 여행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퓩스 교수는 “대학원생이었을 때 무심코 들어갔던 세미나가 미래를 바꾸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이 과학적 발견에 있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과학자의 정체성이나 연구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퓩스 교수는 마지막으로 “과학적 호기심과 긍정적인 사고, 도전 정신이 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과학은 항상 새로운 질문과 발견을 통해 발전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