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국내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물질 ‘LK-99′의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LK-99 공동 연구를 진행했던 퀀텀에너지연구소와 권영완 고려대 교수가 갈라서면서 LK-99라는 이름을 버리고 저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인 초전도체 연구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26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메리대 교수와 퀀텀에너지연구소는 내년 3월 4일 미국 미네소타에서 열리는 ‘미국 물리학회(APS) 학술대회’에서 ‘PCPOSOS’의 상온 초전도성을 실험한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PCPOSOS는 LK-99와 다른 화학식을 가진 물질로 이 역시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성을 갖는다고 연구진은 주장하고 있다. LK-99와 마찬가지로 납과 구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황(S)을 더했다. LK-99의 검증에 나섰던 국내 검증위원회를 포함해 해외 연구진들은 LK-99가 황화구리(Cu₂S) 불순물에 의해 초전도체와 유사한 특성을 보인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황을 추가한 새로운 물질을 공개한다는 것은 권 교수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권 교수는 지난 15일 고려대에서 기자들과 만나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출판을 준비하는 논문의 수정본에서 물질의 화학식이 바뀌었다”며 “내가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는 물질과 이들이 주장하는 물질이 전혀 다르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앞서 발표한 논문에서 제시한 물질과 PCPOSOS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APS 홈페이지에 공개한 초록(발표 요약본)에 따르면, 퀀텀 측은 PCPOSOS가 상온 초전도성을 갖는다는 근거로 지난 7월 발표한 아카이브(arXiv) 논문을 인용하고 있다. 두 물질이 상호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LK-99의 한쪽 면은 자석과 붙은 채로 다른쪽 면만 공중에 떠 있는 영상에 대한 설명도 초록에 덧붙였다. 자석 위에서 물체가 완전히 공중부양하는 ‘마이스너 현상’은 초전도체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연구진은 “일부분만 공중에 뜨는 현상은 자석 자기장의 불균일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자석의 중심이 임계 자기장 범위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PCPOSOS는 타입2 초전도체에 해당하면서도 타입1의 특징인 양자 고정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새로운 공중 부양 영상과 자석 영상을 2개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학계는 여전히 싸늘한 반응이다. LK-99 검증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창영 서울대 교수는 “물질을 새롭게 합성한 후 분석이 잘못돼 화학식이 바뀌는 경우는 이따금 있다”면서도 “결국 같은 합성법으로 만든 물질에서 국내외 연구진이 초전도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PCPOSOS를 공개하면서 LK-99라는 이름은 더이상 사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권 교수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사용하는 LK-99라는 이름을 짓는 데 나는 참여한 적 없다”며 “서로 다른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자신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상온 초전도체에 ‘K직지’라는 임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K직지는 LK-99와 같은 화학식을 갖고 있다. 사실상 같은 물질이라는 의미다. PCPOSOS의 화학식에 변화가 생긴 만큼 특허권을 둘러싼 소유권 분쟁도 새로운 판도를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LK-99 특허의 출원인인 퀀텀에너지연구소는 특허권에 대한 우선적인 권리를 갖는다. 다만 공동 발명자인 권 교수와 김지훈 전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소장이 퀀텀에너지연구소를 떠나면서 특허권을 두고 분쟁 중이다. 권 교수는 특허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자신에게도 LK-99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 교수는 “특허는 기존 화학식을 바탕으로 출원한 것”이라며 “화학식이 다른 새로운 물질에 대한 내용은 출원된 특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