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장경희 6G포럼 집행위원장이 지난 5월 3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6G포럼 출범식에서 활동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뉴스1

“6G 상용화 시기를 2026년으로 전망한다. 새 정부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2026년까지 6G(6세대) 기술시연을 목표로 상용화 기술 프로젝트 등 현재 계획을 대폭 수정해 목표를 달성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4월 21일 대통력직인수위원회는 6G 기술 선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발표했다. 6G는 현재 상용화된 5G 기술보다 약 50배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이다. 초고속과 초저지연, 초연결성을 구현할 수 있어 대량의 데이터를 요구하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자율주행을 실현할 핵심 기반기술(인프라)로 꼽힌다.

6G의 상용화 시기는 당초 2030년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최근 세계 각국이 기술 경쟁에 속도를 내면서 2028년으로 2년 앞당겨졌다. 윤석열 정부도 6G 상용화를 위해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마련하고 연구개발(R&D)을 집중 지원해 6G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7월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만나 6G 공동 연구와 표준을 확보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6G 상용화를 위한 내년도 예산이 예상보다 적게 반영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6G 기술 개발 사업은 난항에 빠졌다. 연구 현장에서는 “6G 기반 산업을 육성하려면 표준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른 국가보다 발 빠르게 시연에 성공해야 한다”며 “내년에 감액된 예산으로는 예정된 시연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2일(현지 시각) 리투아니아 빌뉴스 리텍스포에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한-핀란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과 핀란드가 공동으로 6G 기술을 개발하고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의논했다./대통령실

정부는 6G 연구를 크게 두 가지 사업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2021년 시작한 ‘6G핵심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내년에 착수하는 ‘차세대 네트워크(6G) 산업 기술 개발’ 사업으로 상용화를 준비하는 것이다.

6G핵심기술개발은 2025년까지 초당 테라비트(Tbps) 수준의 데이터 전송을 위한 무선통신 기술과 인프라, 안전성은 물론 3차원(3D) 공간 통신과 위성 통신과 연계하는 기술 확보가 사업의 주요 내용이다. 올해 사업에 투자된 예산은 326억5200만원이지만 내년에는 253억4800만원 22.4% 깎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이번 예산 삭감에 대해 “6G 상용화를 준비하기 위한 2차 사업이 지난 8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며 내년부터 새로운 사업이 시작된다”며 “2차 사업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절약해 효율적인 연구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계도 기술 트렌드가 바뀌면서 예산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연구를 기획할 때만 해도 6G구현에 필요한 주파수는 서브테라헤르츠(㎔)로 상당히 고대역이 주목 받았으나 현재는 대부분 국가가 기가헤르츠(㎓) 수준의 ‘어퍼미드밴드’에 집중하고 있다”며 “연구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6G 기술의 실질적 상용화를 위한 사업에 해당하는 차세대 네트워크(6G) 산업 기술 개발 사업은 내년에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보다 예산이 삭감됐다. 예타 결과가 과기정통부의 예산안 확정 이후에 나온 탓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8월 22일 ‘2024년 국가 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년도 예산안을 공개했다. 그러나 6G 상용화를 위한 2차 사업 예타는 바로 다음날인 8월 23일 발표돼 엇박자가 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산도 계획보다 적게 배정됐다. 당초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내년도 이 사업의 예산은 498억3000만원으로 책정됐지만 새 예산안에는 150억원만 배정됐다. 원래 계획된 예산의 32%에 머무는 수준이다.

2차 사업에 참여하는 한 연구자는 “예상보다 적은 예산에 2026년 6G 시연 가능성도 불투명하다”며 “사업의 다른 과제 예산을 조정해 시연 준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계가 6G 시연을 서두르는 이유는 차세대 이동통신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한국은 5G 이동통신을 가장 처음 상용화하고도 표준을 선점하지 못해 관련 장비와 부품을 수입에 의존했다. 이 연구자는 “2026년이면 6G 표준이 결정되지 않을 시기인 만큼 선제적으로 기술을 시연해 표준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관련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