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침팬지와 비슷한 크기지만 손과 발의 모양은 오늘날 사람과 흡사한 미스터리 원시 인류가 현생인류의 조상보다 훨씬 앞서 무덤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이에 따라 현생인류만 한 크기의 두뇌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복잡한 행동이 훨씬 오래 전 원시 인류부터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의 리 버거(Lee Berger) 교수가 이끈 미국 지질학회 연구진은 6일 논문 사전 출판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호모 날레디(Homo naledi)로 알려진 멸종된 화석 인류가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보다 최소 16만 년 전에 지하 동굴 두 곳에 시신을 의도적으로 묻었으며, 무덤 입구에 기하학 표식도 남겼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 결과를 담은 세 편의 논문을 바이오아카이브에 실었다. 해당 논문은 정식 심사를 거쳐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게재가 확정됐다.
◇인류 매장 기록 16만년 앞당겨
버거 교수 연구진은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인근 '떠오르는 별(Rising Star)'이라는 이름의 동굴 깊숙한 곳에서 호모 날레디의 화석을 발견했다. 날레디는 현지 언어로 '빛'라는 뜻이다. 연구진은 2015년 이라이프에 발표한 논문에서 침팬지보다 약간 큰 두개골의 크기로 볼 때 250만~280만 년 전의 인류 초기 종(種)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이 동굴에서 최소 27명의 유골이 발굴됐다.
연구진은 후속 논문에서 호모 날레디의 연대를 33만5000~24만1000년 전으로 수정했다. 화석 주변 퇴적물에 있는 방사성 물질에서 방사능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또 치아 에나멜에 있는 결정(結晶)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에너지가 변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호모 날레디는 인류의 직계 조상과 공존(共存)했다고 볼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3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진화했다.
당초 연구진은 호모 날레디가 동굴에 시신들을 가져와 안치했지만, 매장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2018년 깊이 8㎝에 가로세로가 각각 50㎝, 25㎝인 구덩이에서 호모 날레디 한 명의 뼈 조각과 치아 83개를 발견했다. 뼈에는 그보다 아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붉은 돌들이 있었다. 연구진은 뼈의 방향과 토양이 교란된 형태를 볼 때 의도적으로 파낸 구덩이에 시신을 묻고 흙으로 덮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아프리카에서 알려진 최초의 인간 매장보다 최소 16만 년 이상 앞선 것이 된다.
이는 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지금까지 케냐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7만8000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유아 무덤이 가장 오래된 매장지로 알려졌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마리아 마르티논-토레스(María Martinón-Torres) 교수 연구진은 2021년 네이처에 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오래된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서 나온 7만~6만년 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먼저 유라시아에 정착했다가 3만년 전 멸종한 인류다.
◇무덤에 남긴 상징도 최고 기록
리 버거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202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동굴의 좁은 틈새에서 유아 두개골을 발견했다.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곳에서 유골이 나와 의도적으로 시신을 매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호모 날레디는 키가 144㎝ 정도로 추정돼 동굴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호모 날레디는 동굴의 미로 같은 통로를 탐색하기 위해 불도 사용했다. 리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이 동굴에서 나온 그을음과 숯 조각, 불에 탄 동물 뼈들은 당시 날레디가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라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7월 동굴 벽에 새겨진 기하학적 상징도 발견했다. 버거 교수는 폭이 17.5㎝에 불과한 좁은 바위 통로를 통과하기 위해 체중을 25㎏이나 감량해야 했다. 그는 호모 날레디 화석이 처음 발견된 동굴 방과 다른 화석이 발견된 힐 방을 연결하는 통로의 입구 격인 천연 기둥에서 다양한 무늬를 발견했다.
기하학적 무늬는 벽 세 곳에서 5~15㎝ 길이 선으로 백운석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백운석은 매우 단단한 암석이기 때문에 조각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선들은 서로 교차하며 정사각형과 삼각형, 십자가, 사다리 같은 형태를 이뤘다.
지금까지 호모 사피앤스는 아프리카 남부에서 8만년 전에 비슷한 상징을 남겼으며, 네안데르탈인도 6만 4000년 전에 같은 흔적을 남겼다고 알려졌다. 남아프리카 동굴의 상징이 실제로 호모 날레디가 만든 것이라면 이 기록을 훨씬 넘어선다. 버거 교수는 "매우 외진 곳에 있는 중요한 위치에서 엄청나게 단단한 바위에 새긴 것은 분명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해석할 수 았다"고 밝혔다.
◇확증 위해선 연대 측정 연구 필요
버거 교수 연구진은 2021년에 동굴 틈새에 매장한 유아 두개골을 발견한 데 이어, 다른 곳에서는 땅에 묻은 어린이들의 뼈와 치아도 발견했다. 유골 한 구의 손 근처에서는 줄무늬가 새겨진 14㎝ 길이의 초승달 모양 돌도 발견됐다. 무덤이나 상징, 도구 같이 인간의 고유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뇌 크기로 결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호모 날레디가 시신을 매장하고 기호로 무덤을 장식했다는 주장은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영국 UCL의 마르티논-토레스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동굴의 타원형 함몰부에 전체 골격이 완전히 정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매장보다 시신을 한 데 모아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동굴 벽면의 기호 역시 아직 연대 측정을 하지 않아 호모 날레디가 남겼는지 확증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엠마 포메로이(Emma Pomeroy) 교수는 "호모 날레디가 상징적인 표시를 남겼다고 단정 짓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흥미진진하며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호모 날레디는 손과 발은 오늘날 인류와 흡사하게 진화했으면서 유독 두개골은 호모 사피엔스처럼 커지지 않았을까. 과학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먼저 독자 진화설이다. 현대 인류로 진화한 다른 원시 인류와 별개로 원래 형태를 거의 유지한 채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다른 쪽에서는 도중에 다시 과거 형태로 역진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 조지 워싱턴대의 버나드 우드(Bernard Wood) 교수는 "아프리카 남부 지역은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생존 경쟁이 덜해 두개골이 계속 커질 필요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며 "자연스럽게 골반이나 어깨도 두개골이 작았던 과거 원시 인류와 비슷한 형태로 되돌아갔을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6.01.543127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6.01.543133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6.01.543135
Nature(2021),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1-03457-8
Science(2018),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p7778
Science Advances(2018) DOI: https://doi.org/10.1126/sciadv.aar5255
eLife(2017), DOI: https://doi.org/10.7554/eLife.24234
eLife(2015), DOI: https://doi.org/10.7554/eLife.09561
Journal of Human Evolution(2009), DOI: https://doi.org/10.1016/j.jhevol.2009.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