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KAIST의 특허 자회사인 KIP가 3D 반도체 기술 ‘벌크 핀펫(Bulk FinFET)’ 특허의 수익 배분을 두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KAIST는 특허 수익을 두고 KIP를 상대로 민사는 물론 형사상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과학기술계와 특허업계에 따르면 KAIST는 지난해 10월 지식재산권 운용 자회사이던 KIP 대표 강모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 고소했다.

핀펫 특허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원광대 교수 시절 개발한 기술로, 글로벌 기업들이 반도체 소형화를 위해 사용했다. 국내 특허권은 KAIST가, 미국 특허권은 이 장관이 각각 소유하고 있다. 이 장관은 재산공개 때 160억원이 넘는 재산을 공개해 윤석열 내각에서 1위를 기록했는데 이 재산의 대부분이 특허 수입으로 알려졌다. KAIST 자회사로 설립된 KIP는 한국과 미국 특허의 전용실시권을 받아 삼성전자(005930)와 인텔, 애플을 대상으로 한 특허침해소송을 진행해 왔다.

한 배를 탔던 KAIST와 KIP 사이에 갈등은 KIP와 삼성전자가 특허 사용료에 대한 한국과 미국 특허 비율을 산정하면서 시작됐다. KIP는 2016년 미국 특허소송 전문 투자회사인 폴리나(Paulina)와 핀펫 특허소송과 관련해 자금을 지원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에서는 특허소송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송을 위해 폴리나와 같은 특허 소송 전문 투자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KIP는 당시 폴리나에서 600만 달러를 받고 350%의 수익을 돌려주는 계약을 맺었다. KIP는 KAIST에 폴리나와의 계약 사실을 알렸고, KAIST도 KIP와 폴리나의 계약을 인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로부터 핀펫 특허 사용료를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핀펫 특허는 한국과 미국의 특허권자가 달라 각국에서의 사용료 비율을 정해야 하는데, KIP는 KAIST의 요구에 따라 36(한국) 대 64(미국)의 비율로 사용료를 받기로 합의했다.

한국 특허의 사용료 비율이 낮게 책정된 것은 반도체 시장 규모의 차이 때문이다. 인텔과 애플에서 사용료를 받을 때 20(한국) 대 80(미국)의 비율이 책정된 것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와의 합의에선 한국 특허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결정된 것이다.

삼성전자와의 합의에서 한국 특허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인지한 폴리나는 2020년 8월 미국 중재재판소에 긴급구제명령을 신청해 KIP가 보유한 한국 특허분 2100만 달러를 에스크로 계좌에 동결시켰다. KIP와 폴리나의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KAIST와 KIP는 폴리나와의 재판 초기만 해도 협력했다. KIP는 폴리나 재판과 관련해 당시 부총장이었던 이광형 KAIST 총장과 대면 회의를 진행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KAIST는 2021년 2월 폴리나와의 미국 중재소송 결과에 따라 한국 특허 사용료가 변동될 수 있다는 내용을 수용했다.

그래픽=편집부

특허 사용료 분배 재판에 협력하던 KAIST는 돌연 KIP에 화살을 돌렸다. KIP가 업무협약서, 기본협약서, 특허수익 배분 합의서를 위반했다며 2021년 3월 미국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KAIST와 KIP는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대한상사중재원(KCAB)에서 중재하기로 했지만, KAIST는 이 계약을 어기고 미국에 제소했다.

특허업계에서는 KAIST의 이 같은 미국 제소에 대해 무리한 조치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협약서를 어겨가며 자회사를 상대로 한 제소는 ‘갑질’에 해당한다”며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위스콘신 동부연방법원도 지난해 10월 KAIST가 제기한 소송을 ‘관할권 없음’으로 기각했다.

KAIST는 그 뒤에도 멈추지 않고 국내에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KAIST는 지난해 10월 KIP의 특허소송 자료와 지출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미 KIP가 KAIST에 손익계산서와 자본 변동표, 소송비용 관련 계약서, 국내 특허 로열티 관련 임금 서류 등 중요자료를 모두 제공하고 있다”며 올해 1월 KAIST 측 청구를 기각했다.

KAIST는 미국 소송이 기각된 뒤 이달 7일부터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KAIST는 KIP를 상대로 형사 고소장까지 접수한 상태다. KAIST 관계자는 민·형사소송을 제기한 취지를 묻는 조선비즈의 질문에 “KIP와의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KAIST의 연이은 소송에 KIP를 상대로 이른바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AIST는 현재 미국에서 폴리나와 삼성전자와 애플 특허 사용료 분배를 둘러싼 소송을 진행 중이다. KIP가 승리해야 KAIST의 특허수익도 보장되는데, 애꿎은 KIP를 대상으로만 소송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허업계 관계자는 “KAIST가 미국 특허소송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KIP가 특허수익을 지급해야 할 자회사라는 단순한 논리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특허 소송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