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라에아 비로이(Ooceraea biroi) 종 약탈 개미의 일개미. 왼쪽은 일반 일개미이고 오른쪽은 돌연변이로 여왕개미처럼 날개가 생겼다. 가짜 여왕개미는 일을 팽개치거고 동료에 기생했다./Current Biology

개미 하면 모두 열심히 일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족처럼 일을 전혀 하지 않고 동료의 등을 치며 사는 개미가 발견됐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6일(현지 시각) 개미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을 소개했다. 모두 같은 종(種)의 일개미지만 한쪽은 돌연변이가 일어나 여왕개미처럼 날개가 생겼다. 돌연변이 개미는 이제 진짜 여왕개미라도 된 듯 일을 팽개치고 다른 일개미들의 보살핌을 받고 편히 살았다.

우세라에아 비로이(Ooceraea biroi) 종 약탈 개미의 일개미. 돌연변이로 인해 여왕개미처럼 날개가 생겼다./Current Biology

◇사냥 빠지고 게으름뱅이 생활

군집에서 기생충이 돼버린 가짜 여왕개미는 미국 록펠러대의 대니얼 크로나우어 교수 연구진이 최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무리 약탈 개미(clonal raider ant)’ 한 종에서 날개가 달린 일개미가 빈둥거리며 동료에 기대 사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무리 약탈 개미는 다른 개미굴에 쳐들어가 알이나 애벌레를 훔쳐 먹이로 삼는다. 척후병 개미가 사냥감을 찾아내고 집에 와 동료에게 알리면 집단 공격이 시작된다.

모두 똑같은 일개미로 구성된 약탈 개미 군집은 척후병이 먹이가 있는 정보를 가져오면 모두 나가 사냥을 한다./Current Biology
여왕개미처럼 날개가 생긴 돌연변이 일개미들은 척후병이 먹이가 있는 정보를 가져와도 사냥에 나가지 않았다. 동료에 기생하는 게으름뱅이가 된 것이다./Current Biology

연구진은 돌연변이 개미의 행동을 알아보기 위해 한쪽 집에는 변이 개미만 넣고 다른 집에는 일반 개미를 넣었다. 척후병이 먹잇감을 발견하고 집에 오자 일반 일개미들은 모두 나와 먹잇감으로 달려갔다(위 동영상). 반면 날개가 생긴 가짜 여왕개미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아래 동영상).

기생 개미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개미 1만5000여 종 중 400여 종이 기생 개미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종의 집에 몰래 들어가 기생한다. 이를테면 다른 종이 분비하는 신호 물질인 페로몬을 몸에 묻혀 동료인 양 위장한다. 과학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특정 개미 종에 기생하는 개미들이 진화했다고 본다.

반면 이번 약탈 개미(학명 Ooceraea biroi)는 단 한 세대 만에 기생 개미가 나타났다. 그것도 다른 종이 아니라 같은 종에 기생했다. 비로이 종의 사회에는 여왕개미가 없고 암컷인 일개미만 있다. 이들이 스스로 알을 낳아 번식한다. 무성생식(無性生殖)을 하는 것이다. 분석 결과 군집에 있는 개미 1만여 마리 중 14마리가 가짜 여왕개미였다. 변이 개미가 낳은 알에서도 역시 날개가 달린 가짜 여왕개미가 나왔다.

우세라에아 비로이 종 무리 약탈 개미. 색이 옅을수록 어린 개체이다. 원래 이 종은 모두 같은 일개미이지만, 일부에서 돌연변이로 날개가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변이 개미는 일을 하지 않고 동료에 기생하며 살았다./Daniel Kronauer

◇슈퍼유전자 변이로 행동·모양 급변

이번 돌연변이 개미는 다른 약탈 개미의 여왕개미를 닮았다. 약탈 개미도 옥토안테나(O. octoantenna) 같이 좀 더 원시적인 종은 다른 개미처럼 여왕개미와 일개미로 구분된다. 연구진은 같은 종에 기생하는 가짜 여왕개미가 다른 종에 침투하는 기생 개미의 예비 단계라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일반 일개미와 가짜 여왕개미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둘 사이 차이는 염색체 13번에 있는 유전자 집단에서 나타났다. 변이가 생긴 염색체는 다른 종 개미에서 사회 계급을 조절하는 염색체와 구조가 비슷했다.

연구진은 여러 유전자가 동시에 작동해 특정 형질을 만드는 이른바 ‘슈퍼유전자(supergene)’가 해당 염색체에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스위스 로잔대 연구진은 네이처에 불개미에서 유전자 600개가 같이 작동하는 슈퍼유전자를 처음으로 찾았다고 발표했다.

그래픽=손민균

크로나우어 교수는 “슈퍼유전자에 생긴 단일 돌연변이로 일개미의 형태와 행동, 번식능력까지 한 번에 변했다”며 “이로 인해 한 세대 만에 같은 종에 기생하는 개미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모두 똑같은 일개미만 있던 군집에서 단기간에 가짜 여왕개미라는 새로운 형태가 생긴 과정을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했다. 이 점에서 역으로 다른 개미 종에서 여러 계급이 생긴 과정을 규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자료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1.067

Nature, DOI: https://doi.org/10.1038/nature1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