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계의 미래를 이끌 4대 과학기술원이 이번 주 일제히 졸업생을 배출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수백 명의 과학도가 배출되지만, 올해는 유독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특색있는 자신만의 연구를 한 졸업생이 많다는 게 과기원의 설명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4대 과기원의 이색 졸업생들이 누가 있는지 정리해 봤다.

올해 KAIST 졸업생 가운데 단연 주목받는 인물은 가수 박새별씨다. 유희열이 이끄는 기획사 ‘안테나’에 소속된 박씨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인공지능(AI)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 씨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가수로 데뷔해 직접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알렸다. 이전까지 AI와 크게 관계 없던 삶을 살아 온 그는 ‘음악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입학했다.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가수 박새별씨. /KAIST

박씨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심리학을 바탕으로 청중이 받는 느낌과 감정을 연구했지만, 음악을 듣는 다는 것이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고 AI 연구를 시작했다. 챗GPT 같은 자연어 처리 모델처럼 음악을 분석하는 ‘멜투워드’ AI를 개발하는 연구로, 소리의 형태 음표와 박자 등을 마치 언어처럼 문장이나 단어의 형태로 만드는 방식이다.

박씨는 “그동안 주관적인 감상과 정서의 산물로 여겨지던 음악을 객관적인 수치로 계산해 분석할 수 있는 정량적 틀을 개발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음악의 유사성은 물론 독창성·예술성·대중성까지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 발전할 수 있고, 사람이 음악에 반응하는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실마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씨는 “박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이제 뿌려진 작은 씨앗을 더 뿌리 깊게 내리며 좋은 학자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더 열심히 살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GIST AI대학원 1호 박사인 김만제 씨. 김 씨는 대학시절부터 게임에 AI를 접목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GIST에 진학한 이후에는 AI 게임 대회에서 다른 나라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GIST

음악과 AI를 접목한 연구를 박 씨가 했다면, 게임과 AI를 접목한 연구로 주목을 받은 졸업생도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의 첫 번째 박사 졸업생인 김만제 씨다. 김씨는 2020년 설립된 GIST AI대학원에서 배출한 첫 번째 박사로, 학위과정 동안 6편의 과학인용색인(SCI) 등재 논문을 발표했다.

김씨는 세종대 컴퓨터공학부에 다니던 당시 김경중 GIST 융합기술원 교수(당시 세종대 교수)를 만난 인연으로 AI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가 좋아하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AI를 접목하는 연구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AI와 게임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김씨는 “‘작곡 AI’를 접하고 AI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AI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그는 GIST에 진학한 이후에도 게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김 씨는 사람 대신 게임을 하는 AI를 개발해 GIST가 주최한 ‘스타크래프트2 AI 글로벌 대전’에 출전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실제 게임을 즐기는 사람만큼이나 e스포츠로 시청하는 사람이 많은 게임이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게임 AI ‘G-SCAI bot’으로 대회에 참가해 아시아팀으로는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했고, 미국·독일·영국·네덜란드 등 4개 국가의 참가팀을 꺾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씨는 “앞으로 AI 분야의 다양한 연구자와 학생들과 함께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대한민국을 빛낼 수 있는 인공지능 연구를 수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차유진 씨. KAIST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사가 된 그는 어린 환자가 숨진 일을 계기로 과학기술을 통해 현대 의학을 보완하려 KAIST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KAIST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후 AI를 공부하기 위해 KAIST를 다시 찾은 차유진 씨도 이번 학위수여식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KAIST에 입학한 후 19년이 걸린 긴 여정이었다.

차씨는 KAIST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해 방사선종양학 전문의가 됐다. 그러나 골육종을 앓던 어린 환자가 숨진 일을 계기로 “의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과학기술에 있으며, 과학자가 돼 그 답을 찾아가겠다”는 다짐으로 2018년 모교인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차씨는 의사가 환자를 진단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의사결정의 특성을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찾고, 이를 활용한 AI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다양한 전공 분야의 임상 의사 약 200명에게 수집한 데이터로 기계학습 이론을 만드는 연구다. 현재 KAIST 의과학연구센터 연구 조교수로 재직 중인 차 씨는 의료인이 임상 현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을 돕기 위해 2017년 ‘의사를 위한 실전 인공지능’을 쓰기도 했다.

차씨는 “인간은 인공지능이 가진 고유한 학습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전문성을 계발하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 능력을 모사해 성장하는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다”며 “인간과 기계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에 반응하면서 진화하는 ‘공진화’의 단계까지 기술을 발전시켜 의료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