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열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공청회가 핵심 쟁점에 대한 여아간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여당은 원전 계속운전이 가능하도록 법을 만든 반면 야당은 사실상 원전 가동 기간을 설계수명인 40년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넣겠다는 입장이다. 여야간 이견이 향후 열릴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련 법이 그대로 폐기될 수도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은 원자력발전에 쓰고 남은 핵연료나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중 방사선 세기가 강한 것들을 말한다. 특별법은 방폐물을 처리할 시설을 짓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공청회에서 여야는 계속운전 여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놨다. 야당 측 전문가인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원전 내 고준위 방폐물 임시저장시설을 무한히 확대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라며 “임시저장시설에 원전 설계수명인 40년 어치 폐기물만 저장할 수 있도록 용량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년치 폐기물만 보관해야 한다는 건 바꿔 말하면 원전 계속운전을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원전을 설계수명보다 길게 가동하려면 폐기물 저장 시설에 40년치보다 많은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여당 측 전문가인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설계수명이 다해가는 원전이라도 적절한 안전성 검토를 거쳐 계속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건 현행법이 보장하는 내용”이라며 “고준위 방폐물 처리시설 용량을 제한해 계속운전을 실질적으로 막으면 법적 일관성에 큰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현재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은 여당에서 2개(김영식, 이인선 의원), 야당에서 1개(김성환 의원)씩 총 3개가 발의돼 있다. 여야는 지난해 말 3개 법을 합치기로 했지만 계속운전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여당 측 관계자는 “이번 공청회로 법안소위에 법안 병합 심사를 올릴 요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쟁점 조율 과정은 법안소위에서 진행될 것”이라며 “법안소위에서도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 법이 통과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합의가 될 거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건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2050년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김영식 의원 법안에 대한 찬반 여부였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확보할 시점을 법으로 정해놓고 이를 위한 기술 개발과 부지 선정에 추진력을 더하자는 취지다.
원전 투자를 유치할 목적도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통해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운영 계획을 문서로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조건을 만족하면 EU로부터 ‘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아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처분시설 운영 시점을 법으로 정하는 건 정부에 이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동의한다”며 “2050년 탄소중립 추진전략과도 맞아 떨어지는 정부의 의지 표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2050년이라는 시점을 법으로 규정해 처분시설을 빠르게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건 좋다”며 “다면 이보다 중요한 건 국민 눈높이에서 만족할 수 있는 과학기술적 결론을 (2050년까지) 내릴 수 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도 “처분시설 확보 목표시점을 의무조항처럼 규정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법률안에 시점을 확정할 게 아니라 시행령 수준으로 위임하는 등 다른 방법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