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이미지. 인공지능은 발명자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Pixabay

국내에서 ‘인공지능(AI)은 발명자가 될 수 없다’는 특허출원 무효처분이 나왔다. AI가 만든 곡과 그림을 예술로 인정해야 하냐란 최근 논란에 더해 소수지만 일부 국가들이 AI 발명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특허청은 지난달 28일 ‘자연인이 아닌 AI를 발명자로 한 특허출원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미국 한 개발자가 자신이 개발한 AI를 발명자로 표시해 국제특허로 출원한 발명에 대해 특허출원 무효처분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특허청에 따르면 미국의 개발자 스티븐 테일러는 ‘다부스’라는 이름의 AI를 개발해 식품용기와 눈에 잘 띄는 깜빡이는 램프를 고안했다며 발명자를 다부스로 지정해 2019년 한국을 포함해 16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한 번의 출원으로 여러나라에 동시 출원 효과가 발생하는 국제 특허출원의 특성상 국내에서도 2021년 ‘식품용기 및 개선된 주의를 끌기 위한 장치(출원번호 10-2020-7007394호)’라는 이름으로 심사가 시작됐다.

출원인은 다부스가 일반적인 발명 지식을 학습한 다음 독자적인 창작 과정을 거쳐서 자신도 모르는 전혀 다른 성격의 발명을 2건을 해냈다고 주장했다. 다부스가 개발한 발명 가운데 식품 용기는 용기 내외부에 오목부와 볼록부를 갖는 프랙털 구조로 용기 결합이 쉽고 열전달률이 높고 손으로 잡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주의를 끌기 위한 신경 자극 램프는 신경 동작 패턴을 모방해 눈에 잘 띄는 램프로, 램프가 동작하면서 관심을 끌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는 게 개발자 설명이다.

특허청은 이와 관련해 올 2월 출원자에게 ‘AI를 발명자로 한 것을 자연인으로 수정하라’는 보정 요구서를 보냈다. 하지만 출원인은 응하지 않았고 결국 최종 출원 무효처분을 내렸다고 특허청은 설명했다.

특허청은 “한국의 특허법과 관련 판례가 자연인만 발명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 독일 등 특허 선진국을 포함해 대다수 나라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처분 배경을 설명했다. 다부스는 현재 11개국에서 출원단계를 밟고 있고, 5개국에선 심판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 발명가 다부스 발명의 탄생 과정/특허청

미국 특허청은 다부스 발명과 관련해 2020년 ‘발명자는 자연인에 한정한다’며 거절 결정을 내렸다. 이후 버지니아 동부지법과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에서도 각각 항소가 기각됐다.

영국에서는 AI가 발명자가 될 수 없고, AI에서 출원인으로 권리양도도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항소법원도 이를 지지했다. 독일에선 발명자는 자연인에 한정된다며 거절 결정을 내렸다. 유럽특허청(EPO)에서도 AI는 사람이 아니므로 출원서에 발명자 기재가 없다며 출원 무효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호주 연방 1심 법원은 인공지능을 발명자로 인정했다. 올해 4월 연방 2심 법원에선 만장일치로 1심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와 향후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독일도 올해 3월 연방특허법원에서 자연인만 발명자로 인정하되 그 성명을 기재할 때 AI 정보를 함께 적는 것도 허용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AI 발명자의 특허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도 특허 선진국에 포함된 만큼 이번 특허출원 무효처분 결정에 따라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은 크다.

AI 발명가의 등장에 대해 각국 특허청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한국과 미국·유럽·중국 등 총 7개 특허청은 지난해 12월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각국 특허청은 이 자리에서 인간의 개입 없이 AI단독으로 발명을 하는 기술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데 공감하면서도 법제도 개선 시 국가 간 불일치는 AI산업 발전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국제적 조화가 필수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현재 발전 속도를 볼 때 언젠가는 AI를 발명자로 인정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며 “AI 발명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해 학계·산업계 및 외국 특허청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