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유전체)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진화에 관한 비밀을 밝혀낸 스웨덴 출신 스반테 페보가 3일(현지시간) 2022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진은 2010년 4월 27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두개골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페보의 모습. /연합뉴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멸종한 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인류와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67) 박사에게 돌아갔다. 이를 통해 현대 만성 질병에 과거 인류의 유전자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평가다. 특히 페보 박사의 아버지 수네 베리스트룀(Sune Bergström)도 지난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아, 부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3일 멸종한 인류 ‘호미닌(Hominin)’의 게놈과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인정, 페보 박사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현생인류와 다른 인류의 혈연관계 밝혀

위원회에 따르면 페보 박사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서열을 처음으로 분석했다. 수만 년 전 멸종한 인류 화석은 미생물과 같은 환경 영향으로 오염돼 정확한 게놈 분석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페보 박사는 네안데르탈인에 이어 데니소바인의 게놈까지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위원회는 이를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김성수 경희대 의학전문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 역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피가 섞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인물”이라며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현대 만성 질병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가설을 내세우며 증명해나갔다”고 했다. 김성수 교수는 “인간 진화에 대해 특별히 기술을 개발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많은 진화에 있어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면 언젠가 노벨상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덧붙였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메달/노벨 미디어

독일에서 페보 박사의 직계 제자와 함께 연구를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생물 유해에서 유전체 정보를 얻어낸다는 것을 독보적으로 개척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홍성태 서울대 의대 열대의학교실 명예교수는 “우리말로 하면 고고유전학을 개척한 인물이다”라며 “노벨상 위원들이 굉장히 클래식한 분들이라 선정될 수 있었을 것이며 최신 트렌드(유행)로 보면 당연히 전량리보핵산(mRAN)이 선정됐을 것이다. 위원회가 학문적인 것을 높이 샀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준희 의정부 을지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페보가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 요소와 연결해 DNA를 분석해 유럽인이 코로나19에 잘 걸리고 입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내용을 2020년에 발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토마스 펄만 노벨 위원회 사무총장이 3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2022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소속 스웨덴 출신의 스반테 페보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집트 미라 DNA 연구에서 출발

페보 박사는 195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6년 웁살라대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변호했으며 스위스 취리히대와 이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는 1990년에 독일 뮌헨대의 교수가 됐다. 1999년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에 막스 플랑크 진화 인류학 연구소를 설립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과학 기술 연구소의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페보 박사는 대학원생 시절 교수 몰래 이집트 미라의 DNA를 연구하면서 고대 DNA를 부활시키는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됐다. 시장에서 송아지의 간을 사다 인공 미라를 만들어 죽은 생물에서도 DNA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멸종 동물과 고생 인류 연구에 뛰어든다.

3만년이 넘은 티끌만 한 뼛조각에서 ‘진화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상태가 양호한 뼛조각을 얻기 위해 독일과 크로아티아, 스페인을 다니며 발품을 팔았고, 현대인의 유전자에 오염되지 않은 완벽한 네안데르탈인 유전체(게놈)를 확보하기 전쟁 아닌 전쟁을 벌였다.

페보 박사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는 최근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이 네안데르탈인과 피를 나눴다는 수정된 결과물을 내놨다. 결론적으로 우리 몸 안에도 아주 미약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다.

부자 노벨상 수상 기록도 세워

특히 페보의 아버지 수네 베리스트룀 역시 지난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다. 아버지와 아들까지 2대(代)에 걸친 노벨상 수상이다. 베르스트룀은 빌산·콜레스테롤의 생합성 및 대사를 연구하며 탄소수 20의 지방산인 프로스타글란딘을 단리해 구조를 결정하고, 염증촉진 등 특이한 생리작용도 가졌음을 밝혀낸 연구 업적을 인정 받아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

노벨상 시상식은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이 숨진 12월 10일에 열리며 수상자에겐 상장과 메달, 상금액이 명시된 문서가 수여된다. 올해는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3억원)가 상금으로 수여된다.

이날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4일 오후 6시 45분 물리학상, 5일 오후 6시 45분 화학상 등 과학 부문 수상자가 잇따라 발표된다. 6일 오후 8시에는 문학상이, 7일 오후 6시에는 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마지막으로 10일 오후 6시 45분에는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로 올해 노벨상 발표는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