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로 불리는 바퀴는 운석 충돌과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을 정도의 강력한 생존력을 자랑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발견될 정도로 생명력이 질기지만 그 억척스러움 때문인지 혐오스러운 곤충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국내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독일 바퀴는 현재 지구상에 가장 번성한 종(種)으로 분류된다. 뛰어난 적응력을 바탕으로 가장 번성했다. 독일 바퀴는 이름이 불러온 오해로 독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정부가 운영하는 한국외래생물정보시스템에도 독일 바퀴는 원산지와 국내 유입 경로가 ‘자료 없음’으로 나온다.
최근 싱가포르 과학자들이 유전체 연구를 통해 독일 바퀴가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독일 바퀴는 무역과 이동을 통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이동했고 다시 전 세계로 진출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전 세계 바퀴의 발원지’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탕첸 싱가포르국립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2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독일 바퀴가 독일이 아닌 아시아에서 유래해 인간의 이동 경로를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바퀴는 1776년 스웨덴의 생물학자 칼 폰 린네에게 발견되면서 처음 그 존재를 인간 사회에 알렸다. 린네는 바퀴를 설명하면서 ‘독일 바퀴’라는 이름을 썼다. 그 후 독일 바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면서 바퀴가 독일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 됐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독일 바퀴가 발견되고 있고, 국내에도 독일 바퀴가 주로 살고 있다. 독일 바퀴는 몸 길이가 1~1.5㎝로 작은 편이며 앞가슴과 등에 짙은 세로 줄무늬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바퀴는 혐오 곤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더러운 환경을 좋아하고 실제로 바퀴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같은 감염성 질환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세균)와 곰팡이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 환경보다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환경에 주로 서식하며 집에서 한번 발견하면 이미 내부에 널리 퍼져 박멸이 어려워 주거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연구진은 독일 바퀴가 전 세계로 확산한 배경에 궁금증을 가지고 그 기원을 찾기 위해 유전체 분석을 활용했다. 유전체는 생명체가 가진 유전 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유전체에는 생명의 진화 과정과 조상을 통해 번성 경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구진은 미국과 호주,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에티오피아 등 17개국에서 수집한 바퀴 281마리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독일 바퀴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현재도 아시아에 주로 살고 있는 ‘아시아 바퀴’로 확인됐다. 이들은 한 뿌리였다가 2100년 전 처음 갈라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아시아에서 살던 독일 바퀴가 인도, 미얀마를 시작으로 인간의 이동 경로를 따라 유럽으로 진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1200년 전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칼리프 왕조는 아시아와 유럽과 교류하며 무역과 군사 교류를 활발히 했다. 독일 바퀴도 이 과정에서 중동으로 서식지를 옮겼다가 다시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유럽에 정착한 독일 바퀴는 390년 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찾아나선 배를 타고 다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흔히 ‘바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독일 바퀴의 이동과 확산의 역사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해충 박멸을 위한 살충제 개발과 저항성 연구를 위한 후속 연구에 이번 연구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탕 교수는 “인간의 상업 활동이 확장하면서 독일 바퀴의 확산도 더 빨자졌다”며 “바퀴와 같은 침입종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연구해 해충 박멸에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PNAS, DOI: https://doi.org/10.1073/pnas.2401185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