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공양미 300석이면 충분히 효도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치매 신약 레켐비로 1년에 3000만원씩 써야 하는 시대입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인구가 많이 늘었는데, 자식들이 부담하기도 어렵고, 국가 차원의 부담도 큽니다.”
묵인희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 겸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는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HIF 2024)′의 다섯 번째 기조연사로 나서서 치매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치매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알츠하이머병은 최근 치료제가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작년에 승인받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그리고 올해 7월 승인된 미국 일라이 릴리의 ‘키썬라(성분명 도나네맙)’가 대표적이다.
묵 단장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치료제가 2021년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레켐비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승인을 받아서 환자들에게 쓸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신약 후보 물질 127개가 164건의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고, 앞으로 좋은 신약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묵 단장은 과거에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타겟으로 한 치료제만 있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치료제와 치료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해도 다른 발병 원인이 있기 때문에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다양한 병의 원인을 다 고려해서 칵테일 치료 요법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현재까지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신경세포 안밖에 쌓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타우 역시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세포 내부에 쌓이면서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타우 단백질 외에도 염증이나 대사질환, 미세아교세포 같은 면역 세포도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한 공략 대상이다.
묵 단장은 “치료제의 투과 경로를 바꾸거나 (뇌로 이물질 침입을 막는) 뇌혈관장벽(BBB) 투과율을 높이는 방법도 있고, 유전자 치료제나 면역 치료제 같은 다양한 치료제도 나올 수 있다”며 “지금은 초기 환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앞으로는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신약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묵 단장은 인공지능(AI)이나 오가노이드(미니 장기) 기술의 발전도 치매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AI와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정밀 의료로 효능 높은 치료제 개발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신약 개발 단계에서 AI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고, 기초연구에서 승인까지 가는데 AI가 도와줘서 승인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