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 질환은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 겨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기온 변화폭이 커지면 혈관이 갑자기 수축해 좁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보통 가을인 매년 10월부터 환자가 늘기 시작해 12~1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전 세계 심혈관 질환 사망자는 연간 900만명으로,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급성 심혈관 질환이 발생했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술은 관상동맥중재술(PCI)이다. 관상동맥은 심장이 필요로 하는 피를 공급하는 동맥과 그 주변 혈관들을 말한다. 관상동맥이 좁아져 혈액이 잘 통하지 않으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한다. PCI는 얇은 관처럼 생긴 의료기기 스텐트를 좁아진 관상동맥에 넣고 부피를 늘려 혈관을 넓히는 치료법이다.
안정민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하고 심혈관 질환 정복에 나섰다. 안 교수는 지난달 2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환자 400명 규모의 임상시험을 통해 AI 심혈관 진단 소프트웨어가 기존 혈관 영상 장비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안 교수 연구팀은 2022년 10월부터 올 2월까지 국내 의료기관 13곳에서 환자 400명을 모집해 ‘플래시(FLASH)’라는 제목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이 사용한 AI 소프트웨어는 국내 의료기기 업체 메디픽셀의 심혈관 질환 진단제품인 ‘메디픽셀(MP)XA’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적 심장학회 심장중재학회(TCT)에서 발표됐다.
심혈관 질환 치료의 핵심은 심장 상태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심장 상태를 알기 위해 심혈관 조영술을 실시한다. 심혈관 조영술은 특정 부위의 영상을 선명하게 하는 조영제와 지름 2~3㎜, 길이 1m인 관을 몸에 넣어 X선으로 촬영해 관상동맥 형태를 관찰하는 방법이다. 심혈관 조영술은 심장 상태를 보여주긴 하지만, 심혈관이 얼마나 협착(狹窄)해 좁아졌는지 수치로 보여주진 못한다.
안 교수는 “관상동맥을 조영술로 질환 상태를 영상으로 볼 수 있지만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다”며 “심혈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선 정확한 크기의 스텐트를 넣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의사의 경험과 눈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는 사람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순식간에 해결해줄 수 있다”고 했다.
조영술 결과를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할 방법은 있다. 광학단층촬영(OCT)과 혈관 내 초음파(IVUS)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런 방법은 비용이 비싸다는 것이다. OCT와 IVUS 같은 혈관 영상 장비들은 모두 비급여로 등재됐기 때문에, 환자가 사용하려면 건당 100만~200만원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심혈관 질환을 치료할 때 혈관 영상 장비를 권고하지만, 사용 비율은 10~40%에 그친다.
이번 연구 결과, OCT와 AI를 활용한 PCI의 결과가 95% 이상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 교수는 “OCT를 활용해 관상동맥을 확장한 면적은 6.3㎟, 메디픽셀XA를 활용한 확장 면적은 6.2㎟였다”며 “일반 조영술로만 시술할 때는 스텐트 면적이 현저히 낮은데, AI가 들어가 열등하지 않은 수준으로 개선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건당 수백만 원에 달하는 OCT 비용으로 정밀한 시술 평가를 받지 못했던 환자들의 진료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를 활용하면 지금처럼 혈관 영상 장비로 정확한 스텐트를 고를 때 나가는 환자 부담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혈관 영상 장비는 한 대당 가격이 수억 원에 달하고, 분석 기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AI 소프트웨어인 메디픽셀XA는 대형 장비와 전담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 진단 비용을 낮춘다.
안 교수는 이번 연구가 AI 심혈관 질환 진단 소프트웨어의 ‘첫발’이라고 평가했다. AI가 기존 방법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이젠 AI 제품이 시술 전후 합병증을 줄일 수 있는지 입증할 대규모 임상시험을 계획 중이다. 임상시험 규모는 두 배 이상으로 늘려 환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다. 안 교수는 환자의 비용과 불편함을 덜어줄 신기술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를 찾는 환자는 하루 30명인데, 모든 의료진이 매일 바쁘게 지내고 있다”며 “AI가 의료현장에 적용된다면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한 국내 사정이 개선돼 더 많은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AI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가진 의료기기 기업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임상시험에 사용된 메디픽셀XA를 개발한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는 “이번 연구는 AI 기술이 심장 시술 분야에서 높은 신뢰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획기적인 성과”라며 “더 많은 환자가 부담 없이 정밀한 의료 서비스를 받아 시술 후 사망률과 재시술 빈도를 줄이도록 기술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JACC Cardiovascular Interventions(2024), DOI: https://doi.org/10.1016/j.jcin.2024.1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