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 인근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내원객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응급실과 마찬가지로 중환자실 역시 위태로운 것으로 드러났다. 중환자실은 의정 갈등 전부터 인력 부족과 낮은 의료 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곳이다. 최근 의정 갈등으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11.6%나 사직하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의료계는 국가가 나서서 중환자 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시설 인프라에도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재화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5일 “응급의학과처럼 보건복지부에 중환자 치료 전담 부서를 마련하는 등 국가가 중환자 전담 전문의를 양성하고 중환자 치료 인프라를 향상시키는 데 투자해야 한다”며 “이것이 실현되려면 중환자 치료에 대한 대중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은 호흡이나 혈액순환, 신진대사 등 급성 기능 부전이 있는 중환자를 24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치료·간호하는 병동이다. 그 만큼 병원 안에서도 특히 전문화된 곳이다. 중환자실을 전담하는 전문의는 내과·외과·흉부외과·신경과·신경외과 등 필수과 전문의 중에서 1~2년간 세부 전문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자리는 다른 의사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의정 갈등으로 인해 중환자실 전담 인력이 줄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상급종합병원 27곳, 종합병원 1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월 기준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146명 중 17명(11.6%)이 사직했다. 이로 인해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당직하는 일수는 월 평균 5.6일에서 6.2일로 늘었다. 주당 근무시간도 62.7시간에서 78시간으로 증가했다. 어떤 병원에서는 최대 125시간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환자실에서도 전공의의 역할이 크다. 의정 갈등 전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인력은 전문의·전임의 대 전공의 비율이 1:1에 가까웠다. 하지만 의정 갈등 이후 이 비율은 9:1이 됐다. 전문의들이 현재 중환자실 업무를 90% 이상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4~5년간 인턴,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된다. 전문의가 된 후 수련병원에서 1~2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전임의(펠로우)라고 한다. 의료계는 현재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전문의가 번아웃(극도의 피로)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할까 우려하고 있다. 또한 의정 갈등이 끝나더라도 다른 곳으로 이직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다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물론 중환자실의 인력 부족 문제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비롯해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중환자실은 병상 수를 기준으로 임시방편으로 확장됐다.

조 회장은 “중환자 치료 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나온다”면서 “하지만 유행이 끝나면 금새 잊혀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독한 사람을 살려내는 곳인 만큼 중환자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기억해, 의료계에서 내놓는 개선안이 제도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홍석경 대한중환자의학회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는 전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증·응급환자 중심, 중환자실 진료체계 개편 방안 토론회’에서 “고난이도, 노동 강도가 높은 중환자치료는 상대적으로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다”며 “전문의 중심 진료 체계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문인력 유입과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 기획이사는 “중환자실 질 향상을 위해서는 단순한 수가 보상을 넘어, 성과지표를 통한 중환자실 등급화를 구현하고 이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화 회장은 “국내 중환자실 병상 수는 인구 대비 부족하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선진국과는 달리 중증 감염병 환자를 대처할 수 있는 의료인력과 시설, 장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낮은 의료 수가로 인해 수익을 올리지 못하다 보니 국내 병원들은 대부분 중환자실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학회 자체에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를 양성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도 이들을 양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