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으로 의료공백이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한 데 이어, 최근 엠폭스(MPOX·옛 원숭이두창)의 국내 유입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병원들이 업무 과부하에 걸렸다. 특히 응급실은 의료진들마저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사실상 마비 상태가 됐다.
18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입원환자 수는 지난 6월 말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8월 2주차(11~17일)에 정점을 기록했다. 병원급 이상 표본감시기관 220곳의 코로나19 입원환자는 총 1357명으로 전주(869명)보다 488명(56.2%) 증가했다. 7월 3주차(14~20일)에 226명이던 입원환자 수가 4주 만에 6배나 늘었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이 전체 입원환자 수 1만 3769명 중 65.4%에 해당하는 9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3~7월 응급환자 237명, 병원 못 찾아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는 “지금 같은 폭염에도 코로나로 인한 발열 환자가 많다”며 “그나마 몇 안 되는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들마저 코로나에 감염돼 일부 응급실은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말했다.
24시간 운영하는 응급실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경우도 늘고 있다. 충북대병원은 지난 14일 오후부터 15일 오전까지 분만, 심근경색 등 14가지 중증 응급질환 진료를 중단했다. 세종충남대병원도 인력 부족으로 이달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을 부분 폐쇄하고 있다.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도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권역별 응급의료상황실 전원 현황’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이 시작된 이후인 올 3∼7월 접수된 전원 요청 5201건 중 273건(5.2%)은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거리 이송이 어려운 중증환자들도 가까운 거리의 병원에는 갈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에 이어 엠폭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엠폭스가 다시 빠르게 확산하면서 국내 유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은 국내 유입 가능성이 낮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력과 사망률을 고려할 때 국내에서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엠폭스 유행은 지난해 확산했던 바이러스의 하위 계통인 변이 바이러스(Clade 1b)가 다시 번진 탓이다. 이 바이러스는 콩고민주공화국을 거쳐 케냐, 르완다, 우간다 등 주변 국가로 확산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올해 확진 사례는 1만 4479건, 사망자는 455명 등에 달한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당장 국내에 유입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작년 유행했던 것보다 지금 변이가 훨씬 전파도 빠르고 사망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유럽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산이 시작되면 국내 유입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여유 병상 확보, 경증환자 응급실 방문 억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황이 악화하자 정부는 우선 응급실 부하 줄이기에 나섰다. 복지부는 인건비와 당직 수당을 계속 지원해 응급실 인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여유 병상을 확보해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을 받을 예정이다.
경증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면 의료비 본인 부담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굳이 응급실을 오지 않아도 되는 경증환자나 비응급환자가 권역응급센터 또는 지역응급센터에 방문할 경우 의료비 본인 부담을 올려 환자를 분산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의료계는 이런 정부 방침에 대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 보기도 바쁜 응급실 의료진들이 언제 응급환자와 비응급 환자를 나누겠냐”며 “응급실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와 의료 공백 장기화 등에 대한 정책을 빠르게 논의해 내달 초 의료개혁 1차 실행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