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0개 의과대학의 신입생 증원 신청 총규모가 정부가 앞서 늘리겠다고 밝힌 2000명을 넘어섰다. 서울 8곳, 경기 3곳, 인천 2곳을 제외한 27개 비(非)수도권 지방 의대들은 기존 정원의 2배 또는 그 이상의 정원을 신청했고, 신청 제출 시한 1시간 전까지 저울질하던 서울 지역 의대 8곳도 각각 기존 정원 대비 약 30~50명 수준으로 신청한 것으로 파악했다.
4일 조선비즈가 전국 40개 의과대학들의 수요 신청 현황과 계획을 조사한 결과, 8개 서울 소재 의대를 제외한 32개 대학들의 증원 신청 규모만 2082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날 오후 11시 기준 경희대는 기존 110명에서 30명~50명으로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일부 대학의 경우 증원 신청 최소·최대치를 제시하거나 비공개 입장을 밝혀 추정치를 반영한 것이라 향후 변동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가톨릭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등은 비공개 입장을 밝혔다. 한 대학 관계자는 “서울 소재 의대들이 오후 11시까지 다른 대학 증원 신청 규모를 견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졌고, 대체로 비슷한 규모로 증원을 신청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이날 의대 정원 신청 마감을 앞두고 의대생 정원 확대 기회를 놓치기 어려운 대학 본부와 증원에 반대하는 의과대학 측이 대립하며 치열한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런 이유로 이날 밤늦게 증원 규모를 결정해 신청하는 대학도 상당 수였다.
권역별로 보면, 서울 내 주요 의대들보다 의대 정원이 적은 미니 의대와 지방 의대들이 적극적이다. 정부가 지방대를 중심으로 증원할 것이라고 발표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충북 청주의 충북대 의대 현재 정원이 49명인데 250명으로 무려 201명, 400% 가량 증원을 신청했다. 충주의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 의대도 현재 40명에서 120명으로 80명 증원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천안의 단국대 의대는 40명에서 120~140명, 순천향대는 93명에서 190명으로 증원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대구가톨릭대는 40명에서 80~100명, 광주 전남대는 125명에서 170명까지 증원을 신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대 의대는 기존 110명인 신입생 정원을 250명까지 늘려 증원을 신청할 계획이다. 경남권 경상국립대는 의대 정원을 기존 76명에서 200명으로 124명 증원하는 안을 신청했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경북대에서 주재한 민생 토론회에서 “(의대에) 130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이 없다. 저희는 300명, 400명 신청하고 싶은데 130명 2개 반으로 250명이란 숫자가 나왔다”며 “현장 실습, 연구 공간, 학습 공간 등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교육을 담보할 수 있는 교원 수가 확보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과 교육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울산대는 기존 40명이던 의대 정원을 110명 추가해 150명으로 신청했다. 인천 가천대는 기존 40명에서 90명으로, 인하대는 기존 49명에서 100명으로 증원 신청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수원 아주대 의대는 40명에서 110~150명 범위까지, 경기 포천 소재 차의과대학은 40명에서 80명으로 증원을 신청할 것으로 파악됐다.
많은 대학들이 의대 증원 신청 막판까지 고심해, 40개 대학별 정확한 신청 규모는 5일이 지나야 윤곽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관심을 모은 연세대 의대 증원 신청 신청 결과에 대해 연세대 측은 비공개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날 윤동섭 연세대 신임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정원 확대 여부에 대해 “의과대학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전국 의과대학 학장님들이 주최하는 전체 교수회의를 통해서 결정된 의견을 강하게 대학에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증원이 여러 가지 여건상 힘들지 않겠느냐, 증원하지 말라’고 대학 본부에다가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은 “의대 증원 여부를 의대와 지속해서 논의 중”이라고 전하면서 “‘대학이 몇 퍼센트 증원하겠다’는 것은 여러 다른 대학 교수님들의 의견을 고려하고 조율한 후에 밝히는 게 맞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각 대학 본부의 입장에서는 지난 1998년 이후 26년간 의대 증원·신설이 없었던 데다, 이번 의료계의 반발로 앞으로는 의대 증원 기회를 잡기 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교육부가 “이날까지 신청하지 않은 대학은 임의로 증원해주지 않겠다”고 밝혀 증원을 신청하지 않는 대학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란 예상이 많다.
국립대 총장들은 “늘어난 의대생들이 지역·필수 의료 분야에 유입되도록 정책을 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의 학장단체인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달 19일 지난해 수요 조사 당시 최대 2847명의 정원을 늘릴 수 있다고 응답했던 것을 두고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정부에 제출했던 점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면서 “전국 대학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의대 증원 규모는 350명”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