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무서운 게 치매, 뇌출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뇌질환은 무섭다. 환자 본인이 기억력과 운동능력을 점점 상실할 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도 오랜 시간 동안 간병해야 하는 심적, 경제적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들 병을 완전히 치료해 이전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이들 병을 아주 초기에 찾아낼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병을 완치할 수는 없어도 병이 진행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기억력이나 거동이 예전 같이 않다면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특히 추석이나 설 때 부모, 조부모의 말이나 행동이 어눌해졌다든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신동훈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가 휴런을 창업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신 대표는 “뇌출혈이나 뇌졸중,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 병 등은 완전한 치료방법이 없으므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특히 중요하다”며 “임상에서 절실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AI를 접목해야겠다는 답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뇌질환을 찾아내기 위해 의사가 직접 컴퓨터단층촬영(CT)나 자기공명영상법(MRI),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이미지를 눈으로 보고 판독해야 했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한 환자라면 어느 전문의라도 쉽게 진단내릴 수 있겠지만, 병이 시작된 초기라면 의사의 경험과 경력에 의존해야 한다.
신 대표는 “누구라도 쉽게, 그리고 아주 빠르게 뇌질환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AI를 개발했다”며 “조기에 발견한 만큼 치료를 빨리 시작한다면 환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26일 인천 남동구 길병원 본관 신경과에서 신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휴런이라는 회사의 뜻이 무엇인가? 이 회사를 창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휴런은 휴먼(인간)과 뉴런(뇌세포)를 합한 단어다. 나는 ‘사람’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세우게 된 계기도 아끼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기 싫어서 였다. 신경과 의사로서 임상에서 평소 안타깝게 생각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AI와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 휴런에서 개발한 AI들을 소개해 달라.
우리가 개발한 AI는 크게 세 가지다. 뇌졸중과 뇌출혈, 뇌경색 등 뇌혈관질환을 조기에 찾아내는 ‘휴런스트로케어스위트’, 알츠하이머 치매와 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성질환을 조기에 찾아내는 ‘휴런에이징스위트’, 그리고 뇌전이암을 자동으로 찾아주는 ‘휴런메타스위트’다.
세 가지 AI 모두 정확도가 90%를 훌쩍 넘을 만큼 정확하고 예민하다. 의사가 맨눈으로 영상 결과를 판독하는 것보다도 훨씬 정확하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이들 AI를 활용하면 의사가 놓칠 수 밖에 없는 극초기의 뇌혈관질환이나 신경퇴행성질환도 조기에 찾아내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 ‘휴런스트로케어스위트’는 어떤 원리로 뇌혈관질환을 찾는가. AI니까 환자 임상 데이터를 엄청 많이 학습했을 것 같다.
뇌출혈이나 뇌졸중으로 쓰러진 환자는 얼른 발생한 부위를 찾아 치료방법을 결정해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보통 CT를 찍는다. 휴런스트로케어스위트는 길병원과 아주대병원, 조선대병원, 충남대병원, 이대서울병원, 부천순천향대병원 등 환자의 CT 데이터 1000여 건과 건강한 사람 데이터 1000여 건을 수집해 뇌출혈 부위나 대혈관 폐색이 있는 부위를 찾아내도록 학습시킨 AI다.
대뇌혈관 폐색은 뇌를 지나는 혈관 중 동맥과 정맥처럼 굵은 혈관이 혈전으로 막혀 있는 것으로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대뇌혈관 폐색을 찾아내려면 조영제를 주사해 CT 촬영을 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려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 이때문에 골든타임인 6시간을 넘겨버릴 위험이 있다.
휴런스트로케어스위트는 조영제 없이도 CT 촬영한 이미지에서도 막힌 혈관을 찾을 수 있다. 마치 조영제를 주사한 후 찍은 CT 영상에서처럼 찾아낸다. 또한 의사가 맨눈으로 찾아내기 힘든 폐색까지도 찾아낸다. 이렇게 AI가 대뇌혈관 폐색을 찾아내는 기술은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
뇌출혈을 찾아내는 정확도는 96.23%, 대뇌혈관 폐색을 찾아내는 정확도는 91.96%에 이른다. 또한 신경과 전문의들에게 AI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나눠 영상을 판독하게 해 비교한 결과 일치도가 0.74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에 가까울수록 동일하다는 뜻이다.
반면 AI 없이 전문의들끼리 같은 영상 이미지를 판독한 결과를 비교했을 때에는 일치도가 0.265에 머물렀다. 의사에 따라 판독하는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AI를 이용하면 의사 누가 활용하더라도 늘 정확하고 빠르게 병변을 찾아낼 수 있다. 그만큼 정확하게 진단을 내려 조기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길병원에서 자체 연구한 결과 환자가 내원해 뇌졸중 의료진이 치료를 시작할 때까지 걸리는 평균시간이 88.76분인데, AI를 활용하면 42.76분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준비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51.8%나 단축한 셈이다.”
─ 골든타임이 무척 중요한 뇌혈관질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맞다. 3차병원은 여러 진료과 전문의들과 전공의들이 대기하고 모여 있지만 2차병원이나 의료원, 지방에 있는 병원에서는 의료진이나 의료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이런 곳에서 신경과 전문의처럼 뇌혈관질환에 대해 아주 잘 아는 AI가 정확하고 빠르게, 심지어 사람과 달리 지치지 않고 24시간 CT 영상을 스크리닝한다면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대뇌혈관 폐색이 있다고 판정이 나오면 병원에서 바로 의료진을 투입하거나,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전원시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뇌혈관질환을 조기에 찾아 치료하면 확실히 예후가 좋다. 환자의 인생이 달라진다. 영국 브레이노믹스도 이와 비슷한 AI를 개발해 비교연구한 결과 환자 예후가 3배 이상 더 나아졌다는 보고를 했다.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가해지는 경제적인 부담, 재활이나 간병 등 심적 부담 등도 나아질 것이고 결국 사회적인 비용이나 인력 문제도 절감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식약처에서 승인을 받았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에서 임상 시험을 마친 상태다.”
─ ‘휴런에이징스위트’는 어떤 영상 이미지에서 무엇을 찾아내는가.
“알츠하이머 치매와 파킨슨은 뇌혈관질환 보다는 정밀한 구조를 알아야 하므로 CT가 아닌, MRI나 PET 영상 이미지를 보고 판독해야 한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나 타우 단백질 등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축적됐는지 봐야한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눈대중으로 파악했다. 뇌혈관질환과 마찬가지로 의사의 경력이나 경험에 의존해 치료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휴런에이징스위트는 정확하게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등이 쌓인 부피와 두께를 측정해 환자 나이대 건강한 뇌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분석한다.
파킨슨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눈대중으로 진단해야 했다. 특히 파킨슨병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생성하는 뇌 영역(중뇌의 흑질 나이그로좀)이 손상돼 생기는데, 이 영역은 좁쌀보다도 작다. 그래서 MRI보다 정밀한 PET로 찍어 확인해야 한다. 휴런에이징스위트는 PET뿐 아니라 MRI 영상에서도 나이그로좀이 손상됐는지 아닌지 확인해 파킨슨병을 찾아낼 수 있다.
치매와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은 계속 진행된다. AI로 1~2년 뒤 다시 판독해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또는 잘 관리됐는지 판단해 향후 치료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MRI나 CT 촬영 후 휴런에이징스위트로 판독하는 데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지금 10분 이내로 줄이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 휴런에이징스위트는 정확도가 얼마나 되나.
정확도는 94.30% 정도 된다.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는 PET 판독의 정확도는 93.2%에 그치는데 이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건강한 사람 1000여 명과, 알츠하이머 치매 또는 파킨슨 환자 각 1000여 명의 데이터를 AI에게 학습하게 해 판독 정확도를 높였다.
휴런에이징스위트는 현재 길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도입해서 쓰고 있다. 약물 치료 후 얼마나 좋아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으니 치매나 파킨슨병에 대한 신약을 개발하는 데에도 이 AI가 쓰일 전망이다. 현재 미국과 독일, 싱가포르, 태국 연구진과 협업할 방법을 찾고 있다.
현재 국내 식약처 인증 통과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메디컬센터에서 200명 참가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 중이다.
─ ‘휴런메타스위트’는 뇌전이암을 찾아낼 수 있다고 들었다. 뇌전이암은 뇌암과 다른가. 뇌전이암을 AI로 찾아내도록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뇌암은 암이 시작된 장소가 뇌신경세포이지만 뇌전이암은 대장암이나 폐암 등 다른 장기에서 시작된 암이 뇌까지 전해진 병을 말한다. 암을 진단받으면 뇌까지 전이가 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심박출량의 4분의 1이 뇌로 가기 때문에, 전이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서다. 하지만 뇌에 생긴 암조직은 매우 작은데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걸 사람의 눈으로 하나하나 찾아내는 일은 매우 고되다.
박지은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와 협업해 건강한 사람 500명과 뇌전이암 환자 500여 명의 데이터를 이용해 AI를 학습시켰다. 현재 박 교수팀이 휴런메타스위트를 식약처에서 승인받기 위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 의사로서 창업을 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AI를 개발하려면 이에 대한 지식도 필요할 것 같다.
“2017년 보건복지부 과제로 신약개발 성공률을 높이는 기술 개발 주제로 선정됐다. 그때 우리 연구팀이 냈던 과제명은 중추신경계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이미징바이오마커를 찾는 AI였다.
이후 AI를 개발하는 공학 연구원 등과 협업해 이전까지 의사들이 맨눈으로 봐야했던 영상 이미지를 더욱 정확하고 빠르게 판독하는 AI들을 개발했다. 스마일게이트와 아주IB, 메가인베스트(현 JB인베스트먼트) 등에서 투자를 받아 휴런도 창립했다.
물론 다른 기업에서도 영상 이미지를 판독하는 AI를 만들고 있지만 대부분 엑스선 판독 AI다. 공학자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신경과 의사로서 임상에서 절실히 필요했던 경험을 살려 뇌혈관질환이나 퇴행성뇌질환, 뇌전이암을 정확하고 빠르게 판독하는 AI를 개발할 수 있었다.
─ 앞으로 휴런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현재 두 가지 AI, 휴런스트로케어스위트와 휴런에이징스위트는 국내 식약처 승인을 받았고 각각 길병원 응급실과 건강검진센터에서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의료기술을 통과해야 수가가 결정되는데 국내에서AI 의료기기 중 이것을 통과한 것이 아직 없다. 그 대신 혁신의료기술을 통과하면 한시적으로 3~5년 정도 수가를 받을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유효성을 입증하면 향후 신의료기술을 통과해 정식으로 수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지난 10월 혁신의료기술에 대한 심사를 신청했다. 12월쯤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뇌질환을 진단하는 속도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엄청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 실제 수가 문제를 해결해 더 많은 의료 현장에서 쓰이고 수많은 환자들을 살리고 싶다.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나 대만,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인정받고 싶다. 전 세계에서 뇌질환 진단과 치료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