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중국발 황사가 찾아온 서울 시청역 전광판에 '미세먼지 나쁨'이 표시돼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높은 농도의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염증 유발 물질이 변이를 가진 세포를 활성화해 폐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뉴스1

대기 중 미세먼지가 폐암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폐암을 일으키는 변이를 이미 갖고 있지만, 활성화되지 않아 정상이었던 세포가 미세먼지로 인해 활성화되면서 폐암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미세먼지로 인한 보건 문제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폐암 예방·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국·영국·캐나다·대만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유전자 변이로 폐암이 발생한 환자를 대상으로 미세먼지에 노출된 정도와 폐암 유발률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6일 발표했다. 국내 연구진으로는 이세훈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참여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21년 대기오염물질인 초미세먼지(PM2.5)의 연평균 안전 기준을 ㎥당 10㎍(마이크로그램, 1㎍는 100만분의 1g)에서 절반 수준인 5㎍으로 낮췄다. 미세먼지가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고, 미세먼지로 인해 전 세계에서 매년 1000만명 이상이 숨질 정도로 국제 보건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조치다. 한국도 WHO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지난 2018년 초미세먼지의 연간 기준을 ㎥당 15㎍로 강화했다.

다만 초미세먼지가 폐암을 비롯한 질병을 유발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세먼지로 발생하는 폐암을 예방하는 방법도 아직 찾지 못한 상태다.

국제 공동 연구진은 한국·영국·캐나다·대만의 폐암 환자 중 EGFR 변이가 발견된 3만2957명을 대상으로 초미세먼지 노출과 폐암 발병률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 16개 지역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폐암 발병률의 관계를 분석했다.

EGFR 변이는 폐암 환자의 80~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 받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비소세포성 폐암 환자의 약 50%에서 EGFR 변이가 발견된다. 특히 국내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의 약 20%가 EGFR 변이를 갖고 있지만, 비흡연자는 48%로, 비흡연자에게 폐암 위험을 더 높이는 요인으로 알려졌다.

국제 공동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에 따른 폐암 발병률은 농도가 높은 지역에서 73%, 낮은 지역에서 40% 정도로 초미세먼지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폐암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초미세먼지 농도에 따라서 EGFR 변이가 증가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동물 실험에서는 초미세먼지가 폐암을 일으키는 과정도 밝혔다. 이미 EGFR 변이를 가졌지만, 활성화되지 않아 정상 상태였던 세포를 초미세먼지가 활성화해 폐암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EGFR 변이가 있는 생쥐를 키워 면역세포가 방출하는 물질의 종류와 양을 분석해 농도에 따라 염증 유발 물질인 ‘인터루킨-1′의 방출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인터루킨-1은 폐 세포의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 세포 분열을 활성해 암으로 발전시켰다.

연구진은 초미세먼지가 EGFR에 직접적으로 변이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다른 유전자에 변이를 만들어 폐암으로 발전하지 않았던 세포가 초미세먼지에 의해 다시 변이가 생기며 활성화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미세먼지로 인한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단기간에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미세먼지가 폐암을 유발하는 과정을 밝힌 만큼 폐암 예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