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 소속 직원들이 22일 인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사업장에서 열린 투쟁 결의 대회에 참석했다. /홍다영 기자

법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노조의 파업을 일부 허용했다. 이에 노조는 앞서 예고한 5월 1일 파업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판결에 불복, 즉각 항고했다고 밝혔다.

24일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민사합의21부(유아람 부장판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기업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지부를 상대로 낸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의약품 제품 변질 우려가 큰 최종 공정만 파업을 제한한다는 판결이다. 배양 등 초기 생산 공정에서의 파업은 사실상 허용되면서 노조는 파업 동력을 유지하게 됐다.

이번 노사 갈등은 지난해 11월 임직원의 개인정보가 내부망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표면화했다. 노조는 보상과 후속 대책을 요구했고, 회사는 협의를 이어갔으나 양측 견해차로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고, 임금·성과급 갈등으로 번졌다.

◇ 법원, 3개 공정만 파업 제동…"배양 등 초기 공정은 생산 활동"

법적 판단이 담긴 결정문에 따르면, 법원은 회사가 쟁의(파업) 금지를 요청한 9개 작업 중 ▲농축 및 버퍼교환(UFDF) ▲원액 충전(DS Filling) ▲이와 연관된 버퍼 제조·공급 등 3개 항목에 대해서만 파업을 막았다.

재판부는 "(이 작업이) 의약품 물질 생성이 완료된 상태에서 유지·보관에 적합한 형태로 조절하는 마무리 작업"이라며 제때 수행되지 않을 경우 제품이 변질돼 폐기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인정했다.

반면, 회사가 핵심적으로 방어하려 했던 ▲플라스크 및 배양기 배양 ▲정제 및 바이러스 여과 등 초기 6개 공정에 대해서는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즉, 파업이 가능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연속 공정의 특성상 작업 중단 시 상당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모든 생산 공정을 '변질 방지 작업'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배양 공정 등은 가치를 창출하는 '적극적 생산 활동'이므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쟁의권의 본질적 침해라는 취지다.

특히 사측이 강조했던 '해동된 세포주 관리' 작업도 법원은 쟁의 제한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 만든 제품이 변질·부패하면 안 되지만, 공장을 세우는 파업은 정당하다'는 논리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해당 과정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활동에 해당한다"라면서도 "단순히 중단 시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쟁의행위 자체를 제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제4공장 배양기를 점검하고 있다.

◇노조 "5월 파업" vs 회사 "불복" 긴장 고조

이번 판결로 노사 양측의 희비는 엇갈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오는 5월 1일 예고된 파업을 강행할 방침이다. 박재성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위원장은 "제품화시키는 일부 공정에 한해서만 작업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기에 파업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측은 모든 공정의 운영 유지를 요구했으나 마무리 공정만 보호받게 된 격이라 파업 시 발생할 생산 차질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이에 사측은 즉각 불복 절차에 돌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결정문을 수령해 일부 인용된 사실을 확인했으며, 인용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즉시 항고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단은 바이오 산업에서 노동조합법 제38조 2항이 규정한 '원료·제품의 변질 및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의 범위를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다.

회사 측은 "쟁의권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 특성과 공정 위험에 따라 제한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생산 차질을 감수하면서까지 진행될 수 있었던 파업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노사 갈등의 파장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의약품은 공정 특성상 연속성이 핵심"이라며 "납기 지연이나 생산 불안 이력이 생기면 신규 위탁생산(CMO)·위탁개발(CDO) 수주에서 불리해지고,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기존 물량 이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향후 바이오 업계 노사 분쟁에서 쟁의 제한 범위를 가르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공정 중단으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헌법상 보장된 쟁의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서 어디까지를 필수 유지 업무로 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며 "유사 업종 분쟁에서도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