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128940)이 주당 2000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 총배당금 규모는 약 254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수준이다. 실적 성장에 힘입어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한 것인데, 최근 대주주 간 갈등과 맞물리면서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자회사 배당이 지주사로…신동국 회장의 현금 루트
한미약품은 오는 31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보통주 1주당 2000원의 현금 결산 배당을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이번 배당금 총액은 253억7822만여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 회사는 2020년 이후 1주당 500원 수준의 배당을 유지하다 지난해 1000원에 이어 올해 배당금을 2배로 늘렸다.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008930)는 보통주 1주당 300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 배당금 총액은 약 203억원으로, 201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작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만큼, 주주 환원을 확대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배당 확대의 가장 큰 수혜 대상은 한미사이언스와 개인 최대 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지분 41.42%를 보유해, 배당금 수익이 약 105억원으로 추산된다.
신동국 회장도 상당한 현금 유입이 예상된다. 신 회장은 한미약품 지분 7.72%를, 한양정밀은 0.95%를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이 받는 배당금은 세전 약 19억7700만원, 한양정밀은 약 2억5600만원으로, 예상 배당 수익은 총 22억3000만원으로 집계됐다.
한미사이언스로부터 신 회장이 받는 배당금은 약 33억7500만원, 한양정밀 약 14억2600만원으로 합쳐 약 48억원이다. 이는 작년 말 기준 신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 16.43%, 한양정밀 지분율 6.95%를 적용해 계산한 것이다.
한미약품이 한미사이언스에 105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해 지주사의 배당 여력이 커졌고, 이것이 다시 신 회장의 70억원대 현금 확보로 연결되는 구조를 이룬 것이다.
이사회 사정에 밝은 한 인사에 따르면 심병화 한미사이언스 재경관리본부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이 배당 확대를 주도했다고 한다. 심 부사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출신으로 신동국 회장이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위해 추천한 인물로, 그룹 내부에선 '신동국 라인'으로 통한다.
지난달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더 늘리는 장외 매수 계약을 체결했다. 거래 대상은 창업자 일가 장남 임종윤 북경한미약품 동사장(이사회 의장) 측으로, 취득 금액은 총 2137억원에 달한다. 이를 통해 신 회장의 지분은 작년 말 대비 6.45%포인트 늘어난 22.88%가 된다.
공시에 따르면 신 회장의 441만여주의 주식 매입을 2차례로 나눠 진행한다. 신 회장이 오는 31일 전까지 거래를 완료한다면 약 13억원의 배당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신 회장이 받는 배당금액은 83억5000만원에 달한다.
◇ 4자 연합 균열 속 '사모펀드식 엑시트' 포석?
일각에선 이번 한미약품의 배당 확대와 인사에서 신동국 회장의 투자금 회수 전략이 엿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배당 수익률을 높여 주가 하락을 방어하고, 영업이익을 끌어올려 기업을 매각하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사모펀드식 엑시트' 전략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약품그룹은 2020년 8월 창업자 임성기 선대 회장의 사망 이후 상속세 문제로 모녀와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그 중심에서 경영권 분쟁의 승패를 가른 '키맨'이 바로 신 회장이다. 그는 고(故) 임성기 회장의 고향 후배로, 창업자 일가의 상속세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지분, 즉 지배력을 키웠다.
경영권 다툼 초기에 신 회장은 형제(임종윤 북경한미약품 동사장,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편에 섰다가 이후 모녀(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와 손잡고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며 4자 연합을 결성했다.
하지만 최근 연합 전선에 금이 갔다. 신 회장이 작년 한미약품 지분을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면서 다툼이 이어졌다. 모녀 측은 사실상 지분 처분과 다름없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신 회장 자택과 지분 일부를 가압류했다. 4자 연합 내부 분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신 회장은 무려 2137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일으켜 지분을 확대한 것이다. 4자 연합의 계약 만료 시기는 2029년으로 알려져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이자 상환 또는 현재 진행 중인 모녀 측과의 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실탄으로 배당금을 활용할 것"이라며 "자금 여력이 있다면 지분을 추가로 늘린 뒤 향후 한미약품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을 통매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12일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전문경영인 박재현 대표의 연임 대신 한미약품 대표이사 교체를 결정했다. 한미약품 차기 대표로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부문 대표가 내정됐다. 황 대표 내정자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글로벌 자산운용사 투자책임자 등을 지낸 금융·투자 전문가다. 외부 인사가 한미약품 대표를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 제약·바이오 전문 연구위원은 "한미약품이 장기적 안목의 연구개발(R&D) 투자보다는 단기적 재무 중심 경영 전략 강화 기조가 짙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