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약가 인하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중견 제약사들이 제네릭(복제약)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뷰티·헬스케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의약품 대비 가격 규제 부담이 적고 고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려는 전략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전통 제약사들은 화장품, 의료미용기기 등 뷰티·헬스케어 분야에 잇따라 진출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단순 제품 출시를 넘어 조직 개편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사업 확장에 나선 것인데, 약값 인하가 예고돼 있는 제네릭 의약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안국약품(001540)은 뷰티·메디컬 에스테틱(의료미용)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오는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에스테틱 사업 진출을 골자로 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뷰티·에스테틱 전담 조직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 단순 유통을 넘어 제품 개발부터 제조, 판매까지 아우르는 사업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안국약품은 원발성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페바로젯(피타바스타틴칼슘·에제티미브)' 제네릭과 진해거담제 '시네츄라시럽' 등을 대표 품목으로 보유하고 있다.
사업 기반도 단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안국약품은 지난해 피부미용 관련 상표를 출원했으며, 최근에는 피부과·성형외과 영업 경력직을 채용하는 등 조직 정비에 나섰다. 지난해 11월에는 헬스케어 기업 디메디코리아를 인수하며 관련 사업 기반도 확대했다.
순환기·고혈압제 중심의 제네릭을 보유한 경동제약(011040)은 이종 산업 간 협업을 통해 뷰티·웰니스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한일전기와 뷰티·웰니스 분야 신제품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건강기능식품(이너뷰티), 기능성 화장품, 이를 보조하는 뷰티 디바이스를 결합한 '토탈 웰니스 솔루션'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전통 제약사들이 뷰티·헬스케어 분야로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정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이라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정부는 신규 제네릭 약가를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현재 53.55% 수준에서 40%대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업계는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대규모 약가 인하까지 현실화할 경우 제네릭 중심 사업 구조만으로는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약가 개편안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키우고 있다.
안국약품과 경동제약의 의약품 사업 구조에서 제네릭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다. 이에 기업들이 빠르게 수익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캐시카우(수익원)로 미용의료 분야를 삼은 것이다. 의약품에 비해 화장품, 필러, 스킨부스터, 의료미용기기 등 뷰티·헬스케어 제품은 상대적으로 개발 기간이 짧고 해외 진출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경우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동국제약(086450)이 일찍이 화장품 사업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고 외형 성장을 이룬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전립선암·성조숙증 치료제 '로렐린데포(성분명 류프로렐린)' 등 제네릭 의약품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이후 2015년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24′을 출시하며 뷰티 시장을 공략했다. 이 브랜드는 상처 치료제 '마데카솔'의 성분 콘셉트를 화장품에 적용한 제품군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대표 제품인 '마데카 크림'은 피부 진정·재생 이미지를 강조하며 브랜드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 이후 뷰티 부문에서 연평균 1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화장품 사업 확대에 힘입어 올해 연매출 1조원 돌파도 기대되고 있다.
다만, 미용의료 시장에 진입한 국내 기업들이 대거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사업 확장만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이 의약품 대비 초기 진입 장벽이 낮지만, 경쟁이 치열해 브랜드 인지도와 유통망 확보를 위한 비용이 많이 든다"며 "전문성을 앞세워 뷰티, 에스테틱 시장으로 뛰어든 주요 제약사들도 최근 시장 점유율 확대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만큼 치밀한 시장 분석과 사업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