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담도암 1차 치료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면역항암제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가 건강보험 급여권에 진입하면서다. 경쟁 약물인 머크(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보다 한발 앞서 등재에 성공했다. 초기 시장 선점 효과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건보 재정에 미칠 영향 역시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수술이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담도암 1차 치료에서 임핀지 병용요법(임핀지+젬시타빈+시스플라틴)에 대한 급여 기준 신설안을 의결했다. 시행일은 3월 1일이다.
급여 대상은 조직학적으로 선암에 한하며, 바터팽대부암은 제외된다. 젬시타빈·시스플라틴은 초기 8주기 병용 투여 후 중단하도록 명시했다. 급여 인정 기간은 1년이다. 다만 1년 내 최적 투여기간에 대한 추가 임상 결과가 제시되지 않을 경우 자동 연장해 최대 2년까지 인정하기로 했다.
◇"초기 처방이 시장 승패 갈라"…비급여 환자 전환 전망도
담도암은 대표적인 저생존 암종이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9~2023년 기준 담낭 및 기타담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29.0%에 그친다. 전체 암 평균(73.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요 암종 가운데서는 췌장암(17.0%) 다음으로 낮다. 폐암(42.5%), 간암(40.4%)보다도 낮다.
병기별로 보면 원격 전이 단계의 5년 상대생존율은 4.1%에 불과하다. 근치적 절제가 가능한 환자 비율이 높지 않은 데다, 오랜 기간 항암화학요법이 사실상 1차 표준요법으로 자리잡으면서 치료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핀지 병용요법은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으며 시장에 진입했다. 의약품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3년 임핀지 국내 매출은 827억원으로 전년(524억원) 대비 58% 증가했다. 비급여 시장에서 일정 수준 처방 경험이 축적된 셈이다.
MSD 역시 2024년 키트루다 병용요법을 1차 치료제로 허가받고 급여 등재를 추진해왔다. 한국MSD 관계자는 "지난달 2·3차 치료제로는 급여 등재를 완료했다"며 "1차 치료제 급여 전략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업계는 초기 시장 선점 효과에 주목한다. 면역항암제는 초반 처방 경험이 축적될수록 의료진의 선택이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기 생존 데이터가 확보됐다면, 진료 현장에서는 먼저 급여가 된 약제를 기준으로 치료 전략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핀지는 글로벌 임상 3상 연구에서 3년 전체생존율(OS)이 대조군인 항암화학요법 대비 두 배 이상 높다는 장기 추적 데이터를 제시한 바 있다. 3월 급여 적용 이후 신규 환자뿐 아니라 기존 비급여 투여 환자의 급여 전환도 예상된다.
◇혁신의 명암…'급여 통과 약가' 상한선 오르면 건보 부담↑
이번 등재는 정책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임핀지의 담도암 1차 치료 병용요법은 '엔허투', '트로델비'에 이어 'ICER(점증적 비용-효과비) 임계값 탄력 적용' 대상이 된 세 번째 사례기 때문이다.
ICER는 비교 치료 대비 추가로 투입되는 비용 대비 얻는 건강 개선 효과를 수치화한 지표다. 일정 임계값 이하일 때 비용효과성이 인정된다. 통상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하며, 국내에서는 약 5000만원 수준이 사실상 준거선으로 활용돼 왔다.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2배 수준까지 탄력 적용해왔다.
복지부는 지난해 약가제도 개편 방향을 제시하며 ICER 임계값을 '적정 수준'으로 상향하고, 질병의 위중도·치료적 이익·재정 영향 등을 반영한 가중치 기반 탄력 적용 모델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신속등재 후 사후평가 체계를 구축해 혁신 신약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ICER 탄력 적용 사례가 누적될 경우 정부의 약가 협상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약도 통과됐다"는 선례가 쌓이면 신규 혁신 신약의 평균 약가 수준이 상향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환자 접근성 확대라는 의미는 크지만, 약제비 지출 비중이 확대될수록 보험료 인상 압박과 재정 지속가능성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2024년 건강보험 약품비 지출은 27조원에 육박했으며, 최근 약품비 증가율은 총진료비 증가율을 웃돌고 있다. 특히 고가 항암제 지출은 2020~2023년 사이 연평균 12.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학계 전문가 13명은 정부 개편안을 분석한 공동 의견서를 내고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고가 의약품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가격 관리 방안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행 ICER 임계값이 과도하게 낮다는 과학적 근거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며 "질병 위중도에 따른 탄력 적용과 임계값 상향은 개념적으로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견서에는 권혜영(목원대), 김윤희(인하대), 김진현(서울대), 배승진(이화여대), 배은영(경상국립대), 양봉민(서울대), 유수연(강원대), 이상일(울산대), 이태진(서울대), 이혜재(한국방송통신대), 조은(숙명여대), 허순임(서울시립대), 홍지형(가천대)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시민단체들도 정부의 약가제도 완화 기조로 건보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달 초 기자회견을 열고 "신속 등재 시 예상되는 투명한 재정 소요 규모와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접근성 열고, 재정 묶는다…정부 "위험분담계약 적극 활용"
김연숙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ICER 임계값 재설정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나 체계가 마련돼 있지는 않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가 신약이 늘어나는 만큼 위험을 제약사와 분담하는 위험분담계약제(RSA)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속 등재를 둘러싼 우려와 관련해서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약제를 빠르게 들여오기 위해 절차를 효율화하려는 취지"라며 "제도를 더 촘촘하게 설계하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현장과 계속 소통하면서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다.
RSA는 환급형과 총액제한형, 성과기반환급형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번에 환급형과 총액제한형 RSA를 체결했다. 환급형은 약제의 청구금액 중 일정 비율에 해당되는 금액을 제약사가 공단에 환급한다. 총액제한형은 연간 청구액이 미리 정해 놓은 연간 지출액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의 일정 비율을 제약사가 공단에 환급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임핀지의 담도암 1차 치료 급여 확대에 따라 약 1805명의 환자가 새로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 추가 재정 소요는 1198억원(본인부담금 포함 시 1261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다만 RSA를 감안하면 실제 건보 재정 부담은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단 관계자는 "임핀지 급여 확대는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반면 재정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RSA 체결로 약가와 총액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약품비가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할 경우 사용량-약가 연동 협상을 통해 사후 관리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