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각하면 그대로 로봇이나 기계가 움직이는 일은 더 이상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뇌와 신체 주요 신경을 컴퓨터로 연결하는 혁명이 이미 시작됐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에 도전하는 혁신가들이 잇따르고 있다.
미래 기술로 불리는 BCI는 뇌의 신경세포(뉴런)가 근육에 어떤 동작을 하라고 신호를 내면 컴퓨터가 그 신호를 해독하는 기술이다. 나중에 그에 맞는 전기신호를 발생해 생각대로 외부 기기를 조작한다. 뇌공학자들은 이 기술을 ‘인류의 미래를 바꿀 혁신 기술’이라고 꼽는다.
특히 BCI는 신경이 손상되면서 일어나는 신체 장애나 루게릭병 같은 마비, 난치성 뇌 질환을 극복할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트러티스틱스 MRC는 BCI 시장 규모가 올해 23억달러(약 3조2124억원)에서 2030년 80억달러(약 11조1736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머스크 회사가 사람 뇌에 최초로 칩 이식
사람 뇌에는 신경세포가 약 860억개 있다. 이 신경세포들은 서로 시냅스(신경세포 연결부)로 연결돼 있다. 사람이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할 때마다 작은 전기 자극이 생성되고 이는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빠르게 전달된다. BCI는 이 체계를 해독하고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 사람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다.
BCI 분야의 대표적인 선구자는 단연 미국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다. 그는 2017년 3월 자신의 5번째 회사 뉴럴링크를 세상에 처음 드러냈다. 바로 BCI 전문 기업이다.
뉴럴링크는 사람 머리카락보다 가는 굵기의 전선 64개로 구성된 칩을 움직임을 관장하는 뇌 운동피질에 이식하는 BCI 기술을 6년에 걸쳐 개발했다. 원숭이 실험 사실이 폭로되며 윤리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뉴럴링크가 개발한 칩을 사람에게 실험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뉴럴링크는 2016년에 다이빙을 하다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환자 아르보에게 지난 1월 처음으로 칩을 이식했다. 아르보는 지난 5월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고, TV를 볼 수 있다”며 “어떤 오디오북을 들을지 어떤 TV 채널을 볼지 스스로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칩 이식 후 독립적인 사람이 됐다”고 했다.
칩이 작동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머리 역할을 하는 칩에 달린 가는 전선 64개가 운동피질에 삽입된다. 각각의 전선에는 전극 16개가 있어 총 1024개의 전극이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인식한다. 뉴럴링크 앱(app·응용프로그램)으로 전송한다. 뉴럴링크의 앱이 이 신호를 분석해 실제 동작으로 변환한다.
머스크는 지난 8월 척추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두 번째 칩 이식 수술을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팟캐스트에 출연해 “두 번째 칩 이식자도 첫 번째와 비슷한 척추 손상 환자”라며 “시술은 매우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식된 전극 중 400개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술 시기와 환자의 신상 정보 등은 밝히지 않았다.
◇뇌종양·파킨슨 등 질병 치료 영역 확장
뉴럴링크 외에도 사람의 뇌에 칩을 심어 다양한 질병의 치료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영국 솔퍼드 왕립병원에서 뇌종양 환자에게 BCI 칩을 심는 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환자 두개골 일부를 제거하고, 0.3㎚(나노미터, 10억분의 1m) 두께의 아주 얇은 칩을 뇌 표면에 설치했다. 이는 머리카락 굵기의 약 5만분의 1 수준이다. 피질에 침투하지 않고 셀로판 조각처럼 살짝 얹는 방식이다.
이 칩을 개발한 회사는 스페인의 인브레인 뉴로일렉트로닉스다. 회사 설립자인 코스타스 코스타레로즈 영국 맨체스터대 나노의학과 교수는 “정상 뇌 세포와 비정상 암 세포를 구별하는 데 그래핀 기반의 BCI 장치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벌집처럼 6각형으로 연결된 판형 소재이다. 차세대 전기전자 소재로 각광받는 그래핀은 구리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흘러가게 하며 강도는 강철의 200배다.
미국 싱크론은 사람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을 필요 없이 혈관을 통해 뇌에 컴퓨터 장비를 심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뇌 신호 전송장치인 ‘스텐트로드’를 개발했다. 원래 혈관을 확장하는 금속 그물망인 스텐트 곳곳에 작은 전극이 걸려 있다. 이 그물망을 일반 스텐트 시술처럼 환자 혈관에 삽입해 뇌 혈관까지 밀어 넣는다.
싱크론은 작년 미국 환자 6명에게 이 장치를 이식했다. 지난달 1일 회사는 지난 1년간 이 장치를 이식한 환자에게 사망이나 영구적 장애가 초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BCI를 이식받은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 마비 환자는 스마트 홈 제어에 성공했다. 싱크론은 지난 4월부터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뇌졸중, 다발성 경화증 등으로 마비가 생긴 환자를 모집해 확증 임상시험을 확장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파킨슨병과 뇌전증(간질) 환자 대상 임상시험 계획도 밝혔다.
가상의 뇌를 만들어 시각장애를 치료하는 BCI를 구현하려는 연구자도 있다. 조선비즈가 지난달 스위스 로잔에서 만난 마틴 쉬림프 로잔 연방공대(EPFL) 교수는 가상의 뇌인 ‘인 실리코(in silico)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다. 그는 전 세계 연구소에서 수집한 인간과 영장류의 뇌 활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디지털 뇌를 만들었다. 가상의 신경세포와 시냅스(신경세포 연결부)를 컴퓨터에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뇌 연산과 같은 방식의 활동이 가능해졌다.
이를테면 눈으로 시각 정보가 들어왔을 때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연산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다. 쉬림프 교수의 최종 목표는 디지털 뇌를 이용해 시각 장애 환자를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뇌에서 나온 신경신호를 컴퓨터에서 해독해 그에 맞는 전기신호를 근육에 전달하는 BCI 방식으로 마비 환자의 몸을 움직인 사례는 이미 있지만, 시각 장애를 치료한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오는 21일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에서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BCI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한다. 임 교수는 국내 최초로 BCI 연구를 시작해 현재 세계적 연구자로 꼽힌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BCI 연구를 접한 후 국내 최초로 BCI 연구에 뛰어들었다. 임 교수는 “현재 컴퓨터를 가르치는 AI 딥러닝을 BCI에 적용해 성능을 향상하는 다양한 연구가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2024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 행사 개요
△행사명: 2024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일시: 11월 21일 09:00~17:00
△장소: 서울 웨스틴 조선 그랜드볼룸
△주제: 신경과학의 혁신과 헬스케어의 미래
△주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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