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다학제 전문가 패널로 구성된 ‘신경독소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미용위원회 (Aesthetic Council for Ethical use of Neurotoxin Delivery, ASCEND)’가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보툴리눔 톡신 내성 탐구: 새로운 인사이트와 시사점’을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ASCEND

싱가포르에 사는 여성 제시(47)씨는 얼굴 윤곽을 줄이고자 3년 동안 6개월마다 보툴리눔 톡신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시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을 바꿔 보고 빈도와 약물 용량을 늘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후 그의 혈액에서 추출한 혈청 샘플을 독일의 특수 실험실로 보내 검사한 결과,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중화 항체가 발견됐다. 약을 썼는데 효과가 적거나 전혀 반응하지 않는 내성(耐性)이 생긴 것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식중독균인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균(菌)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근육 마비를 일으켜 주름을 펴는 효과가 있다. 대중적인 피부 미용 의약품으로 자리 잡은 보툴리눔 톡신의 내성 문제가 최근 의료계의 화두로 부상했다.

7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학술 행사 ‘어센드2.0(ASCEND 2.0)’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가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했다. 어센드는 ‘신경독소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미용위원회(Aesthetic Council for Ethical use of Neurotoxin Delivery)’로, 피부과, 성형외과, 면역학, 생명윤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다학제 패널이다.

◇의료진·환자, 보툴리눔 내성 인지해야

전문가들은 보툴리눔 톡신 내성 문제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보툴리눔 톡신이 단순히 피부 미용에만 쓰이는 약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약물은 사시나 다한증, 요실금, 만성 편두통, 뇌졸중, 뇌출혈 합병증 등 안과·신경과·치과 치료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호주미용성형외과학회 소속 성형외과 전문의인 니브 코도프 박사는 “뇌졸중, 뇌출혈 환자의 주요 합병증인 상부 근육 경직, 근육 마비를 치료할 때 보툴리눔 톡신을 쓰는데, 내성이 생기면 치료가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환자와 의료진이 보툴리눔 톡신 내성 문제에 소홀한 경향이 있는데, 이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슈”라고 말했다.

실제 아태 지역에서 보툴리눔 톡신 내성 의심 환자가 늘고 있다. 이날 발표된 아태 지역 보툴리눔 톡신 시술 환자 2588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성을 경험한 비율이 81%에 달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6~8월 호주·홍콩·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한국·대만·태국 등 8개국에서 진행한 조사이다. 내성 경험자는 지난 2018년 69%, 2021년 79%로 계속 늘었다.

박제영 압구정오라클피부과 원장은 “보툴리눔 톡신 내성 문제를 겪는 환자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다양한 제품이 나오면서 시술을 받는 소비자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데다, 한국과 태국에선 근육이 있는 몸보다 마른 몸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인해 시술 범위가 커 내성 문제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얼굴 미간 주름 개선에는 보툴리눔 톡신이 소량 투여되지만, 승모근, 종아리 등의 근육을 축소하는 데는 더 많은 양을 주입해야 한다.

A형 보툴리눔 신경독소의 분자 구조. 그림 A(왼쪽)는 정제되지 않은 초분자 복합체 구조. 그림B는 불순물을 정제한 코어 신경독소. /리서치게이트

◇불순물·고용량·다빈도 투여 내성 유발

보툴리눔 톡신 내성을 유발하는 요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불순물을 제거하지 않은 비(非)순수 톡신을 꼽았다. 이를 다빈도, 고용량으로 투여해 내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불순물은 복합단백질과 비활성 신경독소, 박테리아 편모와 오염물질 등이다.

마이클 마틴 독일 유스투스 리비히 기센 대학교 면역학 교수는 “현재 시중에 나온 대다수 보툴리눔 톡신 제품이 신경 독소와 효능에 관여하지 않는 복합단백질을 갖고 있는데, 이런 불순물이 면역반응을 유발해 내성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내성을 예방하려면 생산공정에서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불순물을 최소화한 순수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허가 받은 기업은 총 20곳이다. 국내 허가를 받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 중 복합단백질을 제거해 공정 처리한 순수 보툴리눔 톡신은 독일 멀츠의 제오민과 한국 메디톡스의 코어톡스 2곳 제품뿐이다.

어센드 참가자들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의료진이 의약품을 윤리적으로 사용하면서 환자가 보툴리눔 톡신 내성 위험을 잘 알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마이클 마틴 독일 유스투스 리비히 기센 대학교 면역학 교수, 니브 코도프 호주 성형외과 전문의·임상책임자, 박제영 한국 피부과 전문의와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왼쪽부터) 니브 코도프 호주 성형외과 전문의·임상책임자, 박제영 한국 피부과 전문의(압구정오라클피부과 원장), 마이클 마틴 독일 유스투스 리비히 기센대 면역학 교수가 7일 조선비즈와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ASCEND

–보툴리눔 톡신 내성이 발생하는 원리는.

(마틴) “보툴리눔 톡신의 내성은 백신의 원리와 같다. 백신은 바이러스를 항원으로 체내에 주입해 항체가 형성되도록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다. 이처럼 보툴리눔 톡신의 박테리아 단백질이 반복적으로 인체에 주입되면서 중화 항체가 생겨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게 바로 내성이다. 내성 문제는 현재 보툴리눔 톡신 제조사마다 다른 정제 과정에서 기인한다. 현재 대다수 보툴리눔 톡신 제품에 신경독소와 효능에 관여하지 않는 복합단백질(불순물)이 들어 있다. 이 복합단백질이 인체에 들어가서 백신처럼 면역반응을 일으켜 내성을 유발한다.”

–복합단백질이 내성을 유발하는 주범인가.

(마틴) “그렇다. 역사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이 복합단백질이 신경 독소를 보호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잘못된 믿음이라고 밝혀졌다.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한 제형을 사용한다면 내성이 생기지 않는 것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복합단백질을 제거하는 게 어려운가.

(마틴) “학자의 시각에서 말하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복합단백질을 제거한 순수 톡신을 제조하는 기업 멀츠가 정제에 관한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해당 공정 기술에 대해 외부에 밝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기업들은 이를 제거하지 않나.

(마틴) “공정 비용과 인허가 같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내성을 유발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복합단백질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두고 있는 것이다. 보툴리눔 톡신 제재 특성상 새롭게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데다 시간이 걸리고 규제 절차도 까다롭기 때문에 굳이 제거하지 않는 것이다.”

(박) “애석하게도 한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저가 보툴리눔 톡신 제품은 순수 톡신이 아니다. 그런데 가격에 민감한 젊은 분들이 주로 이를 택한다. 이른 나이에 보툴리눔 톡신을 맞기 시작하면서 잡단백(복합단백질)이 몸에 쌓이면서 내성이 생길 수 있다. 방부제 같은 첨가제가 들어간 톡신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지속적으로 맞으면 몸속에서 단백질 변성이 유발되고, 변성된 단백질을 이물질로 인식해 항체 반응에 따른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

–보툴리눔 톡신 내성이 미미하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코도프) “미용 목적으로 보툴리눔 톡신을 고용량, 다빈도로 투여받은 환자가 내성이 생기면 중대한 수술과 치료 등에서 사용해도 효과가 없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의학계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다. 이번에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아태 지역 환자 2588명 중 66%는 시술 용량을 늘리거나 불순물이 함유된 제품으로 치료를 계속하거나 시술 간격을 단축하는 등 내성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 패턴을 보였다. 내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효과가 줄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거나 주기를 더 짧게 해 자주, 많은 양을 맞으면서 내성 위험을 더 키우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나 학계, 규제기관 등이 보툴리눔 톡신 내성에 관한 세부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는 데서 비롯된 한계도 있다.”

–내성 여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박) “내성을 확진하는 혈청 검사나 항체 분석 검사는 비용이 비싼 편이다. 그 대신 전두근(이마 근육) 검사로 내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눈을 치켜뜰 때 움직이는 좌우 이마 근육 중 한쪽에만 약물을 주사한 뒤 2주 뒤 변화를 보는 방식이다. 주사한 쪽이 주름이 덜 잡힌다면 약효가 있는 것이지만, 양쪽이 똑같이 움직이면 약효가 없거나 내성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내성이 생긴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코도프) “치료 효과가 이전보다 감소한 수준을 넘어 아예 무반응이라면 선택지가 없다. 보툴리눔 톡신 시술을 멈춰야 한다. 독일 의료기관에서 진행된 환자 대상 연구 사례를 보면 복합단백질이 섞인 보툴리눔 톡신을 꾸준히 맞아 내성이 생긴 환자가 치료를 한동안 중단한 이후 순수한 보툴리눔 톡신 제형으로 바꿔 사용해 내성을 줄여 나간 사례가 있다. 다만 100%는 아니다. 환자에 따라 달랐다.”

–내성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틴) “내성 발현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음부터 순수 톡신 제제를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코도프) “의료진과 환자의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의료진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보툴리눔 톡신 제품별 차이점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면역원성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있어 고도로 정제된 톡신 제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