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다이이찌산쿄 본사 회의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이현주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전무. /한국다이이찌산쿄

최근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는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 drug conjugate·ADC)'를 이용한 항암제 개발 열기가 가장 뜨겁다. ADC는 암세포를 탐색하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서 암세포에 보내 필요한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항체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에만 결합하는 면역 단백질이다. 비유하자면, ADC는 미사일(항체)이 표적(암세포)에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를 터뜨리는 것과 같다. 그만큼 다른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아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치료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특성으로 ADC는 종양학의 새 시대를 열 핵심 열쇠로 여겨진다. 아스트라제네카, 길리어드, 화이자, 로슈,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 암젠, 애브비 등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이 ADC 개발에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하며 앞다퉈 개발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다. 시장조사기관인 글로벌데이터는 2029년 세계 ADC 시장이 약 4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ADC 경쟁에 불을 붙인 게 바로 일본 제약기업 다이이찌산쿄가 아스트라제네카와 제휴해 시장에 내놓은 ADC 항암 신약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다. '엔허투'는 전이성 HER2(인간 표피 성장인자 2형) 양성 유방암·위암 치료제로, 유방암 분야에서 최초로 승인된 ADC 항암 신약이다. 미국임상암학회(ASCO) 등 국제학술대회에서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무진행생존기간(mPFS)이 28.8개월이라는 전례 없는 데이터로 세계 의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다이이찌산쿄 본사에서 만난 이현주 항암사업부 전무는 "엔허투는 다이이찌산쿄의 열정과 장인정신이 오랜기간 응축돼 있는 결정체"라며 "화학요법과 비교가 아닌 표적항암 신약과의 직접 비교 임상을 통해 4배 이상의 생존 개선을 보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 전무는 국내 제약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항암사업 전문가다. 1999년부터 한독 마케팅, 사노피 마케팅, 한국로슈 항암제사업부본부장, 한국노바티스 혈액암사업부 전무를 거쳐 올해부터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전무로 영입돼 팀을 이끌고 있다. 그가 로슈 재직 당시 담당했던 제품이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이다. 허셉틴은 허투(HER2) 양성 유방암을 표적하는 최초의 치료제다. 노바티스 혈액암 사업부에서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타시그나', 골수섬유증 치료제 '자카비' 등을 담당했다.

다이이찌산쿄는 심혈관계 분야에 집중하던 기업이다. 엔허투는 이 회사의 1호 항암제로, 항암전문기업으로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셈인데 시작부터 기존의 항암제 시장 강자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는 2029년까지 세계 ADC 시장을 다이이찌산쿄가 독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이이찌산쿄는 ADC를 바탕으로 오는 2025년까지 63억달러(약 8조 2057억원)의 항암제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한국다이이찌산쿄도 이에 발맞춰 지난 2021년부터 항암사업부를 신설하고, 사업과 인력 등을 확대했다. 이는 현재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이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을 하는 흐름과 대조적이다. 또 현재 엔허투가 국내에서는 비급여라, 투약비용이 1인당 연간 1억50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내년 국내 급여 적용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전무는 "허셉틴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한 치료제였다"며 "최초의 허투 양성 유방암 치료제부터 현재 치료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는 엔허투까지 커리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영광이자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 전무와의 일문일답.

ADC신약 '엔허투' 작용기전. /다이이찌산쿄

─다른 ADC와 비교해 '엔허투'는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나.

"ADC(Antibody-Drug Conjugates)는 항체, 페이로드, 링커 세 가지로 구성된다. '엔허투'는 링커와 페이로드에서 다른 ADC와 차이가 있다. 엔허투의 링커는 좀 더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페이로드는 낮은 농도에서도 높은 항암효과를 보이며 주변 암세포에도 연쇄적으로 항암효과를 일으킨다. 이에 따라 엔허투는 기존 치료제보다 더 우수한 효과를 보이고, 더욱 다양한 암종에서 효과를 나타낸다. 임상연구에서도 암 환자가 질병의 진행 없이 생존하는 기간을 뜻하는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edian Progression-Free Survival, mPFS)'을 기존 치료제의 6.8개월 대비 4배 이상 연장시키는 효과를 확인했다."

─ 다이이찌산쿄의 ADC 개발 성공 요인은 뭔가.

"다이이찌와 산쿄가 합병되기 전, 2000년대 초반 다이이찌에서 실시한 약물 접합 연구가 시초가 돼 다양한 링커와 페이로드 연결을 시도 평가했다. 그 결과 최상의 조합인 '엔허투' 개발에 성공해 2019년 12월 미국 FDA의 허가를 받았다. 4명으로 시작한 ADC 연구팀은 점점 규모가 커져 엔허투 개발 당시에는 26명이 됐고, 지금 더 많은 인원이 ADC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다이이찌산쿄 글로벌 CEO인 마나베 스나오 회장은 연구개발(R&D) 부서 출신으로, 회사는 기본적으로 R&D를 중요하게 여긴다. 보통 제약사에서 치료제 개발 연구 도중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른 연구로 전환하기도 하는데, 다이이찌산쿄는 오랜 기간 집중해서 연구하는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실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한 결과 다이이찌산쿄가 저분자 약물에 상당한 기술력을 지닐 수 있었고, 그 결실이 바로 ADC 약제들이다. 대표적 ADC인 엔허투도 장인정신과 열정이 오랜 기간 응축돼 탄생한 약이다. 올해 마나베 스나오 회장이 방한했을 때도 연구자 개인이 하고 싶은 독자 연구에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이 다이이찌산쿄의 주요한 성공 요인이라고 본다."

─ 다음으로 출시될 ADC 포트폴리오에는 어떤 치료제가 있나.

"처음 엔허투가 개발됐을 때는 '쓰리(3) ADC'라고 해서 3가지의 ADC 포트폴리오가 있었다. ADC의 항체와 페이로드를 접합하는 링커 기술은 다이이찌산쿄가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앞으로 나올 다이이찌산쿄의 항암제 포트폴리오는 엔허투의 링커와 페이로드에 다른 항체를 접합한 형태의 ADC들이다.

많은 약제가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고 최근엔 '세븐(7)ADC'까지 항암제 포트폴리오가 확장됐다. 엔허투 이후에 나올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향후 2~3년 이내 한국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는 폐암과 유방암을 겨냥한 약제들이 가장 유력하다. 이후에는 임상시험을 통해 적응증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임상 시험에 따르면 해당 ADC들이 다양한 암종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

─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엔허투를 '태양'에 비유했다. 국내 유방암 환자들 사이에서도 '태양 신약'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박 교수는 환자들이 그동안 여러 개의 '약제'를 쓰며 생존기간을 이어가는 상황을 여러 개의 '촛불'을 켜 어둠을 밝혀왔던 것에 빗대었다. 그동안 환자 치료에 쓰인 약제가 촛불이라면, 여러 촛불(기존 약제)을 합친 것보다 더 커다란 빛을 내리쬐는 게 '엔허투'라는 의미에서 '태양'에 비유한 것이다. 기존에도 허투(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엔허투만큼 환자의 생존 기간을 길게 연장한 치료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암은 질병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환자가 생존하는 기간을 충분히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엔허투 같은 효과가 좋은 치료제를 더 먼저 사용하면 환자 삶을 연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의료진의 이런 표현에 우리 직원들도 큰 자부심을 느꼈다. 유방암은 40~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나타난다. 유방암 환자들은 가정에서 엄마이자 아내, 딸이다. 이들은 가족에게 태양과 같은 존재다."

─ 엔허투가 국내에서 아직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됐다. 지난해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서 '엔허투 건강보험 승인 촉구에 관한 청원'이 5만명 동의를 두 번 달성해 화제였다. 의약품 중 이런 청원 기록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현재 정부와 논의가 진행 중인가.

"작년 12월 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엔허투에 대한 급여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지난 5월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를 통과한 이후 현재 심평원 논의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암질심은 해당 약제가 급여를 할 만큼 임상적으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이다. 그 다음 경제성 평가 과정인 경제성평가소위원회와 위험분담제를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지 논의하는 위험분담제소위원회를 거친다. 지난 11월 엔허투에 대한 경제성평가소원회와 위험분담제소위원회 진행이 완료됐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 개최만을 남겨두고 있다. 한국다이이찌산쿄와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내년 1분기에 약평위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엔허투 급여 논의에 진척이 있는 상황 같은데.

"직원들끼리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유방암 환자에게 엔허투 급여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고, 이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 현재 해외 주요 국가의 엔허투 급여 현황은.

"미국, 유럽, 캐나다,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급여 적용이 됐다. 아시아에서는 최근 호주와 싱가포르에서도 급여화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상위 10개국 중에서 급여가 안 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OECD 37개국 중 60% 이상에서 이미 보험 급여가 이뤄졌다.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이 엔허투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제한된 상황이다."

─ 엔허투의 글로벌 유방암 치료 시장 점유율은 어느 수준인가.

"해외 국가의 유방암 치료제 시장 데이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엔허투의 경우 기존 치료제 대비 환자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환자들에게 매우 우선적으로 사용이 고려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 한국에서 엔허투의 약가를 전 세계 최저가로 제시했다고 들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뭔가.

"회사가 암질심 단계에서부터 약가를 많이 낮춰 제안했는데, 이는 전례없는 일이다. 한국 시장은 전 세계에서 영향력이 15위 이내에 들 정도로 중요한 시장 중 하나이고, 이는 본사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약가 때문에 좋은 치료제에 대한 한국 환자의 접근성이 제한돼서는 안된다는 회사의 의지가 컸다. 사실 글로벌 본사에 약가를 승인받는 것 자체가 쉬운 절차가 아니다. 특히 엔허투는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판매하고 있는 약제이기 때문에 글로벌 본사를 설득하는 데 두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고, 양사 협의를 통해 의사결정 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글로벌 본사를 설득하는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경제력이 있는 일부 환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환자들이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 다이이찌산쿄의 항암 분야 성공을 위한 포부와 중장기 계획도 공유해달라.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총괄을 맡은 후 엔허투 출시를 기점으로 조직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항암제 포트폴리오가 더 늘어남에 따라 항암사업부도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라 본다. 엔허투를 뛰어넘어 두 번째, 세 번째 ADC까지 국내에 성공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의 다음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다이이찌산쿄를 엔허투뿐만 아니라 다양한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갖춘 '항암제 주력 회사'로 인식시키고자 한다. 유방암뿐만 아니라 모든 암 환자가 가족과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 여정에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가 함께 하겠다."

☞유방암 종류와 치료법

유방암은 호르몬 수용체와 HER2, Ki-67(세포 안 단백질) 발현 정도에 따라 '호르몬 양성 유방암', 'HER2 양성 유방암', 호르몬과 HER2 모두 갖고 있지 않은 '삼중 음성 유방암'으로 구분한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은 여성호르몬 중 하나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에 단백질이 결합된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를 발현하는 암이다. 'HER2 양성 유방암'은 HER2를 발현하는 암이다. HER2는 정상적인 세포에도 근소하게 존재해 세포의 증식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 단백질이지만, 과잉 활성화가 되면 유방암의 예후인자로 바뀌어 세포 악성화에 관여한다. '삼중 음성 유방암'은 호르몬 수용체와 HER2를 모두 발현하지 않는 유방암이다. 유방암의 기본적인 치료는 병변의 외과적 절제다. 다른 장기에 전이가 없는 모든 환자는 수술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보조 치료법으로 '항암화학요법', '호르몬요법', 'HER2 표적치료' 등이 있다. 호르몬요법은 호르몬 양성에서만 유효하고, HER2 표적치료는 HER2 양성에서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