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대표이사가 서울 강남역 인근 위치한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 대표는 “애질런트는 연구개발(R&D) 성과를 뒷받침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지난 17일 오전 서울 강남역 신분당선 인근 바로 앞에 자리한 22층짜리 고층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올라가니 입구 왼쪽에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의 연구개발(R&D) 시설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크로마토그래피라는 기기가 유리병에 든 물질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 기기는 혼합물의 개별 성분을 분리·식별하는 장비로, 의약품이 정해진 분량에 맞춰 일정하게 구성됐는지, 불순물은 없는지 확인하는 데 쓰인다.

유재수 한국애질런트 대표이사는 “강남 연구시설은 제품개발은 물론, 고객사에게 제품을 시연할 수 있는 영업소이자 교육시설”이라며 “서울 도심 한가운데 연구시설을 갖추는 게 쉽지 않지만, 과학자, 기업, 의료진은 물론, 내부 연구진까지 최적의 위치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애질런트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다. 지난 1999년 휴렛 팩커드(HP)의 계측기 사업으로 출발해 현재는 생명과학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생명과학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반도체 부품·시험 장비사업을 정리하는 한편, 화학분석기 기업과 암 진단업체를 사들이며 체질개선을 지속해서 시도했다.

주력 제품은 크로마토그래피, 질량 분석기와 생명과학 연구에 활용되는 세포분석기, 염기서열 분석기, 동반진단기기 등이다. 대학과 연구기관,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고객이다. 세계 110국, 27만5000여 실험실에 장비를 공급했다. 경쟁사로는 미국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과 워터스가 있다.

유 대표는 “세포분석과 유전체 진단 연구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연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며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처럼 생산이나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지만,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실은 분석 장비를 중심으로 좌우에 유전체 진단과 세포분석을 위한 실험실을 갖췄다. 유전체 진단 연구실은 1㎡당 먼지 같은 입자가 100개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반도체 설비 공정과 유사한 수준이다. 세포분석실은 생물학적 위험도가 높은 미생물을 연구할 수 있는 생물안전 2등급(BSL-2) 인증도 받았다.

애질런트는 1999년 설립 직후 아시아·태평양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 진출했다. 한국의 임상시험과 진단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 도시별 임상시험 등록 건수 1위다. 지난 2017년 이후 계속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의료 인프라가 집중돼 임상시험에 최적화한 환경으로 평가된다.

성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이 회사는 회계 마감을 매년 11월에 한다. 가장 최신 자료는 지난 2021년 말 기준 매출 2600억원으로, 전년(2087억원)보다 24.58% 늘었다. 그 전 3년 동안 10% 안팎의 성장세를 보인 것에 비하면 비약적 발전이다. 유 대표는 “국내에서도 부족한 부문을 인수합병(M&A)으로 채우며 직접적으로 비즈니스 역량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 결과”라고 말했다.

애질런트는 지난 2018년 국내 분석·과학 기기 유통업체인 영인과학을 인수했다. 회사는 1976년 설립된 영인과학이 오랜 기간 쌓아온 판매와 서비스 노하우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유 대표는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전략적 M&A와 R&D 투자에 집중해 왔고, 이런 기조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