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4개 제약사가 판매하는 근육 진통제들이 조만간 약국에서 무더기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식 품목허가 의약품을 대상으로 5년 단위로 진행하는 허가·신고 갱신 과정에서 ‘약의 유효성을 입증할 자료가 부족하다’고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제약사들은 허가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진 취하’나 식약처의 ‘제조업무정지’ 처분이라는 갈림길에 섰다.
21일 국내 복수의 제약사에 따르면 식약처는 전문가 자문 결과를 통해 국내 제약사 34곳이 허가받은 ‘클로르족사존 250㎎과 아세트아미노펜 300㎎’를 섞은 근육 진통제의 유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효성 판단 기준은 미국을 비롯해 해외 주요국 6곳에서 같은 함량을 가진 의약품이 허가 됐는지 여부다. 결국 해외 6개국에서 국내 제약사 제품과 같은 의약품 허가 사례가 없었다는 의미다.
클로르족사존은 근육통 치료에 주로 쓰이는 약의 성분명이며, 아세트아미노펜은 해열진통제 주성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두 개 제제를 활용해 먹는 근육 진통제를 개발해 식약처로부터 허가받아 제조·판매 해왔다.
식약처는 전날인 20일까지 해당 의약품 허가를 보유한 국내 제약사 34곳에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자료 미제출 시 제조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뒤 허가 취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 처분 이전 제약사는 품목 허가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진 취하를 택할 수도 있다. 어떤 수를 택하더라도 앞으로 약국에서 34종에 달하는 일반의약품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식약처 통보를 받은 국내 제약사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제조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뒤 허가 취소를 받는 것보다 스스로 취하하는 게 대외적으로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씨티씨바이오(060590)를 시작으로, 신일제약(012790), 코스맥스(192820), 신신제약(002800)까지 총 6개 기업은 의약품 허가를 자진 취하하거나, 유효기간 만료 후 연장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일부 제약사도 식약처에 자진 취하 절차 의사를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사들이 제조업무정지 처분이나 자진 취하를 피하기 위해서는 유효성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그러나 자료 제출을 위해서는 유효성을 입증할 임상을 진행해야 한다. 임상 진행 비용을 고려하면 ‘실익’이 떨어져 실제 임상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돈이 되지 않으니 시장에서 철수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국내 제약사 약 40곳의 클로르족사존과 아세트아미노펜 복합제 생산실적은 60억원 규모다. 기업 1곳당 평균 1억5000만원을 생산하는 셈이다.
이마저도 특정 상위 업체들이 독식하는 구조다. 2021년 기준 태극제약의 파라존정이 6억원으로 전체 10% 이상을 차지했다. 10개 기업의 경우 허가만 받고 생산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서는 식약처가 의약품 허가·신고 갱신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전까지 식약처는 제약사가 유효성 입증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더라도 유효기간 내에서는 판매할 수 있게 해줬지만, 이제는 미제출 시 곧바로 행정처분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