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화 걸어 비대면 진료를 보고 있다. /뉴스1

정부와 의료계가 2년 만에 마련한 비대면 진료 합의안이 무효가 될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붕괴된 소아 진료체계 복원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비대면 진료를 내세웠지만,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과 의사면허취소법 처리를 두고 의료계가 내부 갈등에 휩싸였고 약사회 등 관련 단체들이 제동을 걸면서 사실상 백지화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2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6일로 예정된 ‘의료현안협의체’ 3차 회의가 잠정 중단된 뒤 재개 여부가 불투명하게 됐다. 지난 1월 30일 첫 회의가 열린 지 불과 보름 만에 멈춰 선 것이다.

협의체 가동 중단에 따라 당장 양측이 합의했던 비대면 진료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부와 의료계는 지난 달 9일 열린 2차 회의에서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한 차례 이상 대면 진료를 한 경우 ‘보조 수단’으로 비대면 진료를 실시하고, 비대면 진료만 전담하는 의료 기관은 금지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의료현안협의체는 올해 1월 약 2년 만에 재가동했다. 하지만 회의를 통해도출한 첫 안건부터 삐걱하고 있는 셈이다. 협의체는 지난 2021년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됐던 의정협의체의 연장선상이다.

협의체는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안과 의사면허취소법 처리가 논의되면서 의료계가 반발하며 운영이 중단됐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개선, 숙련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등을 담고 있다. 의사면허취소법은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처럼 의사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열린 '간호법안 폐기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료계 내부는 물론, 약사회마저 비대면 진료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서울시내과의사회는 서울시의사회, 서울시약사회와 함께 지난 21일 비대면 진료 정책 중단을 촉구했다. 비대면 진료 특성상 오진 위험성이 높고, 의료사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은 의료계 내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내과의사회가 비대면 진료하면 내과가 돈을 못 버니까 반대한다”라고 지적했다. 내과의사회는 이에 대해 법적 대응 계획까지 밝히며 강하게 반발했다. 양측이 대화로 사안을 해결하며 갈등을 봉합했지만, 비대면 진료 반대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약사회가 여전히 비대면 진료 허용 이전 약 배달 서비스를 막아야 한다는 조건부 허용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복지부는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정부는 6월까지 법 개정을 완료해 비대면 진료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월 22일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밤에 아이들이 이상하다 싶으면 비대면으로 상담을 받게 해야 한다”며 비대면 진료 체계 도입을 주문했다.

복지부는 지난 달 27일 의협에 협의체 재개를 공식 요청했지만, 의협 측은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철회가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은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을 저지하기 위해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총파업’까지 언급하며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