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젤 보툴리눔 톡신 제제(수출명 레티보). /휴젤

보툴리눔 톡신(보톡스) 대표 기업인 휴젤이 미국에서 메디톡스와 보톡스 균추 출처를 둘러싼 본격적인 소송전에 대비하고 있고 있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보톡스 업계에 따르면 휴젤은 지난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요구한 보톡스 균주 관련 증빙 서류를 반출하도록 허가해 달라고 승인을 요청했다.

휴젤은 앞서 1월 산업부에 서류 해외 반출 승인을 이미 한 차례 요청한 것으로 ITC가 최근 공개한 휴젤 변호인단 문서에서 확인됐다. 이번에 휴젤이 두 번째 서류 해외 반출 승인을 요청한 것은 경쟁사인 메디톡스가 ITC에 제기한 분쟁 소송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휴젤은 서류 등을 보완해 본격 소송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주름 개선과 미용 목적으로 사용되는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보툴리눔 톡신은 생화학 무기로 사용될 정도로 강한 독소다. 정부는 국가 관리 대상에 보툴리눔 톡신을 포함하고 있으며, 관련 자료를 해외에 반출하기 위해서는 정부 승인이 필수다. 일각에서는 정부 검토가 필수인 서류 반출이 늦어지고 있는 것을 휴젤이 소송을 지연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전에도 신청이 들어온 것이 있어 모두 처리했는데 갑작스레 보완할 게 있다며 추가 승인 요청을 받은 상태”라며 “다음 절차로 가기 위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공개한 휴젤과 메디톡스의 분쟁 과정 발췌. 휴젤이 과거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자료 반출 승인을 거부 받은 적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캡처

휴젤과 메디톡스는 지난 3월 이후 1년째 미국에서 법적 공방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월 메디톡스가 휴젤을 비롯, 휴젤아메리카, 유통 협력사 크로마파마 등을 상대로 ITC에 보툴리눔 균주 도용 여부를 가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을 상대로도 ITC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2020년 12월 대웅제약의 제조공정 도용을 인정하며 21개월 간 미국 수입 금지 판결을 내렸다. 결국 양측 판매 로열티를 주고받기로 합의하면서 수출 금지 문제는 일단락됐다. 이는 국내에서 진행된 민사소송 1심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대웅제약에 기존에 만든 균주 완제품과 반제품을 모두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메디톡스에 손해 배상금 400억원도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휴젤은 대웅제약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ITC 판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찾고 있다. 휴젤 측은 ITC에 “산업부가 관련 서류의 해외 반출 승인이 늦어지면서 경영에 타격을 입었다”며 소송 조기 종료에 힘을 실어왔다. 하지만 ITC 소속 변호사 3명으로 구성된 담당조사관은 “정부 당국의 승인 지연이 수사 종결에 대한 합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며 결국 본격적인 공방이 이뤄지게 됐다. 메디톡스를 대리하는 변호인단도 아닌 재판부가 별도로 지정한 중립적인 변호사들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소송 조기 종료는 어렵게 됐다. 휴젤은 다음 절차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휴젤이 이번에 정부에 보톡스 추가 자료 승인을 요청한 것도 앞으로의 소송을 뒷받침하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서류 반출 절차는 산업부 내 품목별 분과 검토를 거친 뒤 전문위원회 등을 통해 최종 결정한다. 전문위원회 결정은 한 달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이 투입됐을 경우 ‘승인’, 기업 자금만 들어갔다면 ‘신고’로 진행된다. 보툴리눔 톡신의 경우 국가 R&D 자금이 투입돼 승인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휴젤이 서류 승인을 문제로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분쟁 과정에서 우리 정부 측 승인 지연을 문제 삼으면서 추가 승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보톡스 업계 관계자는 “메디톡스와 비교해 휴젤 측이 방대한 양의 서류를 제출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승인 요청을 받은 이후 최대한 빠르게 승인을 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메디톡스 오창 1공장에서 메디톡신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 /메디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