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10여개의 대형 모니터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환자가 걷거나 차를 타고 병원을 찾은 시점부터 떠날 때까지 의료 전주기 흐름을 모니터링하는 통합관제모니터링실의 모습이다. 각 모니터는 병원을 찾은 환자 현황과 병실, 수술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가용 현황을 보여준다. 한림대성심병원은 이곳을 ‘커맨드센터’로 부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성심병원 제2별관에 자리한 도헌디지털의료혁신연구소에서 만난 이미연 커맨드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은 “병원은 크고 복잡한 조직지만 생각보다 디지털 병원이 아니었다”며 “모든 업무가 디지털화하려면 일종의 콘트롤타워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커맨드센터는 병원 내 ‘흐름’을 분석한다. 병원에 도착한 환자가 주차장을 거쳐 접수창구로 향하는 과정부터 진료받기 위해 필요한 혈압 측정, 수혈을 마친 뒤 의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병원 내 일부 구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병목 현상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특정 구간에 환자가 몰릴 것을 예측해 다른 쪽으로 환자를 유도하는 식이다. 환자로서는 병원에서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의료진도 사전에 어떤 환자를 만날지 예측할 수 있으니 진료 효율성이 높아진다.
이 센터장은 “커맨드센터에 적용한 기술은 새로운 기술이 전혀 아니다”라며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커맨드센터 외에도 빅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센터, 데이터전략팀, 비대면환자케어센터, 덴탈임플란트로보틱센터, 가상현실(VR)센터와 같이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다양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에는 여러 대학 연구진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일종의 거점 사무실이다. 안명희 한림대의료원 데이터전략팀장은 “의대 교수뿐 아니라 공과대 교수들도 연구소를 찾아와 함께 논의를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산하의 각 조직이 맡은 업무는 다르지만, 모두 개방을 기반으로 한 포용성을 강조한다. 병원 안팎의 여러 의견을 취합해 실제 의료 현장에 녹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커맨드센터 역시 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고질병인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의료진 작은 아이디어를 살려 실제 의료기기에 반영한 사례도 있다. 대형 모니터에 10명 이상의 환자 생체신호를 표시하는 것이다. 한 화면에 2~3명의 환자 정보만 보여주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한 간호사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이를 통해 여러 명의 환자의 중증도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최근에는 새로 들여올 여러 종류의 로봇을 병원 내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 로봇들은 환자에게 병원 내 길을 안내해주는 길라잡이 역할과 약을 배송하는 데 활용 중이다. 약 배달의 경우 마약류와 같은 물질을 제외한 단순 배송 업무를 맡긴다. 모두 현장 의료진의 의견을 반영해 투입한 것이다.
병원 외부의 로봇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노인 환자와 전화로 퇴원 후 상태를 확인하기에는 한계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카메라를 탑재한 소형로봇으로 영상통화를 하면 전화보다 낫지 않겠냐는 판단에서다.
안명희 팀장은 “폐쇄적이던 병원이 최근 스마트 병원으로 거듭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있다”면서 “사업을 주도하는 전담 부서, 행정, 간호에 이르기까지 전사적인 지원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실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병원을 통해 축적한 다양한 노하우를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유경호 한림대성심병원장은 “다양한 미래 의료 기술 기반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위해 연구소 내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혁신 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미국과 유럽 파트너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