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0만명 이하 중소도시 아파트에 놀이터·어린이집 등 아동용 공동시설 설치 의무가 완화될 가능성이 생겼다. 가구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아파트는 놀이터·어린이집 등을 설치해야 하지만, 중소도시의 경우 놀이터·어린이집을 대신해 어린이와 고령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지방을 중심으로 중소도시에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놀이터·어린이집이 설치되더라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이 통과될 경우 주택건설사업자가 거주민의 특성에 맞는 아파트를 유연하게 지을 수 있게 되면서 단지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어린이 시설 설치 의무 완화가 장기적으로 아동 유입 기반을 약화시켜 지역 소멸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이종배 의원 등 12인은 인구 30만명 이하인 시·군의 경우에는 아파트를 지을 때 놀이터·어린이집을 대신해 어린이와 고령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이 의원은 "도시 규모 및 인구 구성을 고려한 공동주택을 건설해 공간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어린이와 노인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 주택법상 주택건설사업자는 주택단지의 규모에 따라 경로당과 어린이놀이터·어린이집·주민운동시설·작은도서관 등을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주택건설기준규정에 따라 어린이놀이터는 15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에 의무 설치된다. 300가구 이상이라면 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55조 4항에는 해당 주택단지의 특성, 인근 지역의 시설 설치 현황 등을 고려해 사업계획승인권자가 설치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이런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으로 현행 시행령으로 가능한 부분을 어린이집 등에 한정해 법 조문에 명확히 규정한 것이다.
최근 들어 급격한 고령화로 의무 설치해야 하는 어린이집·놀이터 등 아동용 공동시설은 이용률이 크게 저조하다. 인구 30만명 이하 지방 도시 상당수는 이미 고령화율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주택법상 공동시설 설치 규정은 여전히 이런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300가구 이상 공공임대 아파트에 어린이집 의무 설치 규정에 따라 어린이집을 지었으나, 저출산 등으로 개소하지 못하고 공실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고령층이 많은 지역의 공동주택 특성에 맞는 단지 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요 없는 어린이용 시설이 설치된 뒤 여러 절차를 거쳐 다른 시설로 용도 변경을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어린이와 고령층이 함께할 수 있는 세대 공용시설을 만들면 아파트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입주민의 거주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간 건설사를 중심으로 어린이 시설 설치 의무 완화가 도시의 고령화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어린이를 위한 인프라가 없는 아파트에는 젊은 층이 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도시의 아동 인구 유입이 줄어들고, 더 나아가 분양도 어려워지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역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시설을 덜 만들어도 되면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다"면서도 "하지만 지방 아파트도 커뮤니티 시설에 대한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놀이터나 어린이집 등 아동용 공동시설이 부족할 경우 미분양이 발생할 수 있다. 계속해서 아이가 있는 가구가 유입되지 않을 텐데 분양을 받으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