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이 요원한 구축 아파트들이 대안으로 추진하던 승강기 교체나 주차장 확충 등 소규모 개선사업마저 주민 동의 문턱에 막혀 좌초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반 찬성을 확보하고도 법적 기준인 '2/3 동의'를 넘지 못해 부결되면서, 노후 단지의 주거 환경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리모델링 사업과 달리, 세대당 수백만원 수준의 소규모 공사에도 동일한 동의 요건이 요구되면서 주민들의 체감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A아파트는 지난달 승강기를 지하 주차장까지 연결하는 공사를 추진했지만 주민 투표에서 부결됐다. 찬성률은 60%대를 기록하며 과반을 넘었지만, 집합건물법상 요구되는 2/3(66.7%) 기준에 미달하면서 사업이 무산된 것이다.
해당 단지는 입주 20년 이상 노후 아파트로, 지하 주차장과 세대를 바로 연결하지 못하는 구조적 불편이 지속돼 왔다. 이에 따라 추진된 이번 공사는 비나 눈이 오는 날에도 계단을 거치지 않고 주차장에서 바로 세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세대당 부담 비용도 200만~230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었지만, 일부 입주민의 비용 부담 반대에 막혀 추진이 중단됐다.
서울 코오롱트리폴리스에서도 지난 3월 총회에서 승강기 전면 교체 안건이 구분소유자 64.53%, 의결권 64.07% 찬성에 그쳐 2/3 기준을 넘지 못하고 부결되는 등 소규모 개선사업의 높은 동의 문턱이 현실적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소규모 공사조차 추진이 어려운 데에는 제도적인 이유가 있다. 승강기 교체, 주차장 증설, 외벽 리뉴얼 등은 공용부분 변경에 해당해 법적으로 입주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기준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 대규모 사업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히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구조가 가장 큰 장애물로 지목된다. 저층 주민은 "엘리베이터 이용이 적다"며 비용 부담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고, 고층 주민은 편의성 개선을 위해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고령 입주민은 추가 지출에 민감한 반면, 젊은 층은 주거 환경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세대 간 갈등도 반복되고 있다.
세입자 비율이 높은 단지에서는 의사결정이 더욱 어려워진다. 실제 거주자는 개선을 원하지만 비용은 소유자가 부담해야 하는 구조여서 합의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입주자대표회의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업체 선정 절차에 대한 불신까지 겹치면서 사업 자체가 장기 표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소규모 공사를 둘러싼 갈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000년 준공한 경기 안양시 호현동 한라비발디에서는 지난해 승강기 전면 교체 안건이 주민 투표를 통과했지만, 입주자대표회의가 일부 교체로 방향을 변경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이후 주민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입찰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법적 분쟁으로까지 확대됐다. 세종시 연서면 대원네스트빌 역시 지난해 승강기 교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부 주민이 반발하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현재까지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 광명시 하안동 두산위브트레지움에서는 지난해 말 주차장 개선 등 새로운 공사를 장기수선충당금으로 하겠다는 내용으로 기존 계획을 변경하려는 주민투표를 진행하면서 "투표에서 반대(부결)되면 세대당 약 15만원을 추가 관리비로 받겠다"는 안내 문구를 넣었다. 이 때문에 "찬성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노후 주거 환경 개선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소규모 공사까지 3분의 2 동의를 요구하는 현행 기준은 다소 높다고 볼 수 있다"며 "과반 수준으로 기준을 완화해 주거 환경 개선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