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까지 5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여야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놓고 공감대를 형성한 모양새다.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권역 안에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안이다.

문제가 많았던 위성정당을 막으려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야 한다고 판단한 국민의힘과 현행 준연동형 제도를 유지하되 권역별 선출에 초점을 맞춘 민주당이 나름대로 절충안 모색에 나선 것이다. 다만 이들의 공감대가 곧 합의가 될지는 미지수다. 아직 당론으로 채택된 것도 아닌데다, 예산·탄핵안 등 산적한 과제에 여야가 선거제 합의에만 시간을 쏟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김상훈 소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요청한 '이달 말까지 선거제 개편 합의'를 위해 물밑 협상을 하고 있다. 오는 12월 12일이 내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일인 만큼, 여야는 이달 안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선거구 획정을 해야 한다.

이번 협상에서 여야가 의견을 모은 건 지역구 소선거구제 유지와 3개 권역별(수도권·중부·남부) 병립형 비례대표 선출이다. 정당이 받은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산출해 그 의석수의 50%를 각 정당 의석으로 배분하는 현행 준연동형 제도가 '위성정당' 출현이라는 부작용이 있었던 만큼 여야 모두가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둘 다 못할 경우 '지역구 의원'과 '비례 의원' 숫자만이라도 이달 내로 합의하자고 야당에 제안하기도 했다.

◇與 "병립형 비례제 회귀" vs 野 "준연동형 유지·위성정당 방지"

현재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로 당론을 사실상 확정한 상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9월1일 의원총회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도로 당론을 정하고 추인까지 받았다"며 "당시 민주당도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에 다수 의견을 표했지만 준연동형 비례제 주장도 많았기 때문에 아직 당 차원에서 의견 일치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주에 당내 이견을 조정해 입장을 정리하는 걸로 안다. 민주당의 당론을 보고 협상할 것"이라면서 "이달 말까지 합의하면 좋겠지만 결국 12월 말까지 마무리 협상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준연동형제를 유지하면서 부작용인 '위성정당 창당'을 금지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정하자는 입장이다. 김상희 의원의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이탄희 의원이 발의한 정치자금법 개정안도 그 일환이다.

정개특위 야당 간사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와 비례 의원 수를 240 대 60 정도로 정하는 등 비례대표 수를 늘리면 병립형 비례대표 제도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게 우리 당의 입장"이라며 "현재는 여야 원내대표 간 논의로 선거제도 협상이 넘어간 상태지만, 진척된 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제도 빨리 합의해야 하지만 그보다 급한 현안들이 많다 보니 차분히 선거제만 협상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11월 말까지 합의는 어려워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12월 둘째 주까지는 여야 협상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은 경남 진주시 선관위원회에서 2024년 4월 시행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투표함 모형 종이접기'. /연합뉴스

◇與野, 공감대 형성과 합의는 별개 문제… 전문가들 "늦어도 2월 중순까진 합의해야"

전문가들은 여야 공감대 형성과는 별개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합의는 불투명하다고 전망한다. 각 당에서 모인 의견을 모두 당론으로 채택한 것도 아니고, 여전히 병립형 비례제 회귀에 부정적인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이견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여야가 선거제 합의만 놓고 시간을 할애하기엔 이들이 직면한 정치적 과제들도 많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제만 놓고 논의하기엔 여야 모두 시간이 없다. 예산안 통과에 쌍특검·탄핵안 등 계속해서 여야 앞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쌓이기만 하고 있다"면서도 "선거제 개편 합의를 통해 지역구·비례 의원 수가 정해져야 선거구도 획정하는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지금은 그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될 2월 중순 전까지가 마지노선"이라며 "그 시기를 지난다면 선거 현장에서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도 본인 선거구를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현직 외의 출마 후보들도 지역구를 어디를 나가야 할지 난감해지는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유권자들 몫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출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 당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만큼 선거제에서 진척도 없고 합의도 더딘 느낌이다. 다만 너무 임박해서 여야가 합의하게 되면 선거제가 졸속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국회의장발(發) 독려나 합의를 위한 회동 추진 등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이어 "선거의 형평성·공정성을 위해서라도 하나씩 신속하고 정확히 합의를 해나가야 한다"며 "마지막 시한까지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구를 획정해버리면 또 많은 부작용을 양산할 게 뻔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하되, 너무 늦지 않는 선에서 여야가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