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자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문재인 정권이 쓰던 ‘미상 발사체’ 또는 ‘불상 발사체’ 표현이 자취를 감췄다. 25일 오전 6시부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미사일을 세 발 발사하자 정부는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이라는 첫 공지를 통해 발사체라는 표현을 지우고 미사일임을 분명히 했다.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중대한 도발”이라며 북한을 규탄했다.

군의 정보력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향상된 것도 아닌데 궁금증을 자아낸다. 문재인 정부 측에서는 이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중요하다”며 ‘정보의 정치화’라고 주장하는 분위기지만, 대통령실에서는 오히려 ‘다른 고려를 하지 않아 빠른 판단’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월 16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미상 발사체' 발사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뉴스1

◇尹정부, 25일 ‘북, 동쪽방향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 공지

이날 대통령실과 국방부에 따르면 앞선 정부에선 합참이 북한의 첫 미사일 도발을 감지하면 언론 공지를 통해 ‘미상 발사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후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추후 공지해 왔다. 그러나 25일 오전 6시부터 북한이 ICBM을 포함한 미사일을 세 차례에 걸쳐 발사하자 합참은 ‘북, 동쪽방향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 공지를 배포했다. 발사체 대신 미사일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담긴 것이다. 대통령실도 오전 7시 7분 이와 관련한 첫 공지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NSC 개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군 당국이 북한이 각종 미사일을 쏠 때마다 ‘불상(不詳) 발사체’ 또는 ‘미상(未詳) 발사체’라고 부르던 게 사라진 것이다.

앞서 북한은 윤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12일 오후에서 초대형 방사포 3발을 동해상으로 연속 발사했는데, 당시 국방부는 1보를 통해 ‘미상 발사체’로 표현했던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미상 탄도미사일’이라고 공지했었다. 국방부는 11일 앞으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면, 이를 언론에 공개할 때 ‘미상 발사체’ 대신 ‘미상의 탄도미사일’로 표현하도록 합동참모본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도 ‘위협’ 대신 ‘도발’이라는 표현을 쓰라고 했다.

이런 내용이 25일 공식화한 셈이다. 실제 정부는 이날 오전 성명을 통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행위이자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상 발사체, 불상 발사체, 위협 등의 용어는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5월 이후 미사일 관련 북한의 행태는 달라진 것은 없는데 표현만 달라지는 셈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뉴스1

◇文정부 측 “첩보 수준에서 미사일 확신 곤란” 주장

이와 관련,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23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김종대의 뻥 뚫리는 TV’에 출연해 “레이더나 이지스함, 인공위성 등 수집 자산에 의해서 막 들어온 ‘첩보’는 분석을 거치기 전이기 때문에 1보는 ‘미상 발사체 동해로 발사’로 표현하고 2보부터는 분석을 통해 ‘탄도 미사일로 추정되는’ 표현이 추가된다”고 문재인 정부 시절 대외 공개 프로세스를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레이더에 발사체가 잡혔고, 모든 사람이 탄도 미사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분석을 거치지 않은 ‘첩보’ 수준이기 때문에 이 수준에서는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초기 단계 정보의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6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전날 열병식을 성대히 거행했다면서 다양한 무기 체계를 공개했다. /뉴스1

◇외신 발표 14분 후 미사일 시인...늑장 대응 논란도

그러나 군 당국이 눈에 띌 정도로 북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모호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5월부터다. 북한은 이때부터 6개월 동안 다양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등을 수십 차례 발사했다. 그럼에도 합참은 ‘불상 발사체’라고 계속 표현했다.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탄도미사일을 쏘았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이 표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분석 중”이라며 파악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외신에는 미사일로 표현됐지만, 유독 한국만 늦게 미사일로 정부가 공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논란이 커진 사례도 많았다. 대표적인 건 지난해 3월 25일 북한의 도발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당해 3월 25일 시험 발사한 ‘신형전술유도탄’의 영어 표기를 ‘발사체(Projectile)’에서 ‘미사일(Missiles)’로 변경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오후 홈페이지에 게시한 영어 기사에서 ‘발사체’ 표현을 모두 ‘미사일’로 수정했다. 중립적 의미의 ‘발사체’라는 표현을 무기의 일종인 ‘미사일’로 공식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합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흘째인 27일까지도 별다른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었다. 특히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600km라고 발표했는데도, 합참은 기존 발표한 450km 비행 거리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만일 북 한미사일이 실제 합참이 파악한 것보다 150km를 더 날아갔다면 탐지에 심각한 결함이 생겼다는 의미다. 탐지가 안 되면 요격도 불가능해진다.

합참은 발사 당일인 25일에도 ‘늑장 발표’ 지적을 받았다. 합참은 이날 오전 7시 25분 ‘미상 발사체 발사’라고 발표했다. ‘미사일 발사’를 발표했던 일본 해상보안청보다 16분 늦은 시점이었다. 합참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시인한 시점은 발사 4시간이 지난 25일 오전 11시 30분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실 “다른 고려 하지 않아 빠른 판단 가능”

부승찬 전 대변인은 “군사 정보의 최종 수요자는 대통령이고 대통령의 인식이 정보를 좌우한다”며 “북한은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하면 정보가 그런 방향으로 왜곡되는 정보의 정치화가 일어나고, 결국 안보를 위한다면서 안보를 위해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앞선 정부에서의 늑장 대응 등 이런 상황을 자초한 부분도 분명한 셈이다. ‘정보의 정치화’ 관련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판단에 있어 다른 고려를 하지 않기 때문에 빠른 판단이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치적인 판단은 전 정권에서 해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