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산림 황폐지 복구를 지원하겠다며 매년 수십억원을 들여 320만여그루의 묘목을 키우는 가운데 처리 방법을 놓고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당장 내년이면 성장한 묘목을 북한으로 옮겨 심을 수 있도록 이식(移植)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출하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매년 묘목을 관리하는데 수십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남북산림협력센터 건립 등 이 사업에 지난 5년 간 198억원이 투입되면서 당장 묘목을 처분하기도 쉽지 않다. 산림청은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묘목을 국내 조림 사업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북 지원 사업 예산으로 구입한 묘목을 임의로 전용(轉用)할 경우 위법 소지가 있고, 이미 국내 조림사업에도 예산이 편성된 만큼 '중복 예산'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발생할 수 있어 처분이 쉽지 않다.

김연철(왼쪽 4번째)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남북산립협력센터 준공식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기념 식수를 하고 있다. /산림청

◇文정부, 北 주려고 묘목에 5년 간 198억 투입…내년에도 76억 배정

4일 산림청이 국회 농림수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산림청이 주관하는 남북산림협력사업 예산으로 76억2200만원을 요청했다. 세부적 예산은 파주와 철원의 남북산림협력센터 운영에 각각 22억5400만원, 고성 대북양묘장 운영에 11억2700만원, 철원 토양오염정화 사업에 12억원, 대북용 종자채취 3억200만원 등이다.

남북산림협력사업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 9·19 평양선언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2017년과 2018년에는 기존에 진행하던 대북지원용 종자 채취를 위해 각각 3억6000만원의 예산이 배정되는 데 그쳤지만, 2019년부터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57억400만원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48억6800만원이 투입됐다. 올해 예산은 84억9800만원으로 전년의 두 배에 가깝다. 내년 예산까지 합친다면 이 사업에 투입 예산은 총 274억원으로 늘게 된다.

대부분의 예산은 남북산림협력센터 건설과 대북 지원용 묘목을 기르기 위한 '양묘장' 등의 시설에 쓰였다. 지난해 운영을 시작한 파주 남북산림협력센터에는 100억원이 투입됐다. 현재 건설 중인 철원 남북 산림협력센터에도 5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으며, 고성 평화양묘장 운영을 위해서도 40억5400만원이 쓰였다. 현재 경기 파주 남북산림협력센터에 213만8400그루, 강원 고성 평화양묘장에 113만5500그루의 묘목이 자라고 있다.

남북산림협력센터의 스마트 양묘장의 모습. /통일부 홈페이지 캡처

◇출하시점 예상 못해…산림청 "국내 투입", 예산 전용·중복 논란

그러나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묘목을 제때 출하해 북한의 황폐지에 옮겨 심게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산림청이 국회에 제출한 북한과의 협력사업 성과는 ▲강원도 고성 산불, 대북 통지문 발송(4월 5일) ▲산림병해충 공동 방제 제안(4월 19일) ▲양묘장 현대화 물품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면제 승인 취득(7월 3일) 등 세 건에 불과했다. 사실상 묘목 출하를 위한 산림협력은 '0건'이라는 얘기다.

야당은 2019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부터 "남북교류 진행 상황을 고려해 남북산림협력사업 계획을 체계적으로 재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북한이 아무런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나무를 키우는 것은 자칫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림청이 매년 예산을 투입해 기르는 묘목들은 짧게는 3~4년을 키우면 조림 사업을 위해 대상지에 옮겨 심어야 한다. 이르면 내년부터 사업 목적에 맞게 수십에서 수백만 그루의 나무들이 이식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식과 관련한 아무런 사전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묘목 출하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산림청은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묘목을 국내 조림 사업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산림청은 이미 올해 국내 조림사업으로 1164억원 예산을 배정받았다. 따라서 대북 지원용 묘목을 국내에 활용할 경우 '전용 논란'과 '중복 예산'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협력사업을 통해 양묘하는 나무들은 대북용이니 북한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남북관계가 잘 안되면 우리나라 조림 사업에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대북 지원용으로 양묘한 나무를 우리나라 조림 사업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전용(轉用) 규정이 있냐'는 질문에는 "(협력사업 운영에 관한 것을) 법에 다 담아서 써두지는 않는다"며 "사업 계획에서부터 설계가 그렇게 됐다"고 했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대북 묘목 지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몇 안 되는 영역"이라며 "이 때문에 미사일 도발에도 남북관계의 끈을 유지하고 싶은 정부와 여당이 무리하게 예산을 투입해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