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전경. / 국세청 제공

국내 제조업체 A사는 실적이 꾸준히 개선돼 이익잉여금이 증가하는데도 수년째 직원 급여를 동결했다. 그런데 이 회사 오너일가는 법인 명의로 수억원대 고가 슈퍼카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조사 결과 A사는 3억원 이상의 고가 슈퍼카 6대를 포함해 외제차 45대를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과정에서 A사가 오너일가가 지배하는 특수관계법인에 가상자산 채굴기 취득 자금 200억원을 무상 대여한 사실도 확인됐다. 오너일가는 개인 명의 해외 계좌에 약 17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세청에 재산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28일 '법인차량 사적 유용 혐의'가 있는 기업 19개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기업들이 보유한 고가 법인 차량은 90대로 시가로는 약 300억원 상당이라고 한다. 19개 기업이 법인자금 유용, 편법 증여 등의 방식으로 탈루한 혐의를 받는 전체 금액은 3000억원에 이른다.

이번 조사는 기업 관계자들이 '연두색 번호판'을 단 고가 법인카를 업무 이외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SNS 등에 과시하는 사례가 사회 문제로 지적된 가운데 진행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임광현 국세청장에게 "고급 외제차를 사서 회장 아들이나 손자가 개인적으로 끌고 다니는 사례가 요즘은 없나"라고 물었다. 이에 임 청장은 "색깔을 달리한 번호판을 단 슈퍼카를 타는 게 오히려 '플렉스'라면서 유행하고 있다"며 "조만간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답했다.

정부는 법인 차량 사적 유용 행위를 막겠다면서 2024년 8000만원 이상 법인 차량에 대해 '연두색 번호판' 부착을 의무화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1억원 이상 법인 등록 차량 수는 2023년 5만1542대에서 2024년 3만3960대로 줄었다가, 작년 3만9429대로 소폭 늘었다. 국세청은 "연두색 번호판이 '진정한 부의 상징'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면서 법인의 고가 차량 구매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이번에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된 국내 건축 제조·판매기업인 B사 사주는 회삿돈으로 6억원에 달하는 슈퍼카 3대를 구입해 쓰다가, 자녀 회사에 저가에 양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는 이 자동차를 사적으로 사용하면서 특별한 업무를 하지 않고 급여 약 2억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화장품 제조기업 C사는 사주 배우자가 회사 명의로 총 7억원 상당의 슈퍼카 3대를 리스해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C사는 사주 배우자 등 가족에게 인건비 약 15억원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또 사주 일가가 골프장, 고급 호텔, 상품권 구입 등에 법인카드 약 10억원 어치를 썼다고 한다.

국세청은 "조사 과정에서 매출 축소 또는 법인자금 유출을 위해 차명계좌를 이용하거나 증빙을 조작하는 등 고의로 세금을 포탈한 행위가 확인되는 경우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고발 조치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