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강원도 영월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야외시험장에서 수소 화재 실험이 진행됐다. 반사판 앞에서 무(無)색의 수소가 일렁이고 있다. /이신혜 기자

“폭발 소리가 크니 모두 귀마개 착용해 주세요! 수소는 색이 없어 잘 안 보이니 뒤에 설치한 반사판을 유심히 봐주세요.” (이동훈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부장)

지난 8일 오후 찾은 강원도 영월군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 야외종합시험장에는 커다란 반사판이 설치돼 있었다. 연구원들은 무(無)색의 수소 화재 폭발 사고를 재현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실험 결과는 안전·화기 거리 및 기준을 만드는 데 쓰인다.

연구원들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이어 3, 2, 1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반사판 앞에 연기가 일렁이며 퍼져나갔다. 1000도가 넘는 화염이 최대 12~13m가량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연구센터 측 설명이다.

축구장 3분의 1 크기 면적이라는 야외 실험장에서 이런 수소 화재 시험을 하는 이유는 야외에서 수소에 불이 붙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증 데이터를 얻기 위함이다. 수소 화염이 어떤 각도로 퍼져나가고, 어느 반경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화재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할 수 있다. 이는 수소충전소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쓰인다.

수소 폭발·화재 등에 대한 각종 실험뿐만 아니라 초고압·초저온 분야의 시험 및 인증, 연구(R&D), 국제 표준 관련 실증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이 연구센터는 지난 2010년 행당동 수소 압축천연가스(CNG) 버스 폭발 사고 이후 만들어졌다.

행당동 CNG 버스 사고는 CNG 버스 내압 용기가 파열된 사고다. 승객 한 명의 다리가 절단되는 등 17명의 중·경상자가 나왔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거나 관련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가스안전공사가 2016년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일대 13만㎡의 부지에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연구센터는 연구동 1개와 시험동 9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고압 용기·부품 시험설비 등 123종 147점의 시험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수소충전소용 부품 공인시험 및 기업의뢰 개발품 실증시험 지원 ▲공사 내 연구과제 실증실험 지원 및 기준 개정 등 연구성과 창출 ▲산·학·연 협업을 통한 수소 제품 국산화 개발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 중이다.

연구센터는 수소자동차와 수소충전소 용기·부품 등의 성능시험을 통해 국산화 개발을 지원하고, 국방부 방호시설과 국내 반도체 기업의 반도체 설비 방호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 폭약 125kg을 6m 거리에서 터트렸을 때 방폭 문 성능에 이상이 없을지 등을 본다. 최근에는 고가의 반도체 설비에 화재가 나거나 폭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다른 설비들에도 불이 붙지 않도록 방호하는 기준 실험도 진행 중이다.

이동훈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부장이 방호인증시험동의 폭발압력저항시험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신혜 기자

이동훈 연구센터 부장은 “최근에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같은 대기업들이 고가의 반도체 설비 사고를 막기 위해 방호 시험을 의뢰하기도 한다”며 “그간에는 국방부나 행정안전부가 방호 제품 시험을 의뢰했지만 이제는 민간까지 수요가 많아져 일종의 블루오션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방호벽 두께만 1.2m, 직경과 두께가 각각 20m에 해당한다는 연소시험동에서는 전날부터 ESS(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 화재 진압 과제인 60kW(킬로와트) 배터리팩 연소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ESS는 잉여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전력이 필요한 시기에 공급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으로 태양광과 전기차 등에 쓰인다. 전기차 수출 등을 앞둔 국내 자동차 기업들의 문의가 이어지자 이같은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에서 31회의 이차전지 ESS 화재 사고가 발생했지만, 2020년 산업부의 안전대책 발표 이후 ESS 최대 충전율을 80% 미만으로 유지하면서 사고가 급감했다. 연구센터 연소시험동을 활용해 ESS 등의 안전 사용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2024년에는 충청북도 음성에 ‘수소버스·충전소 부품 시험평가센터’를 준공해 그간 국내에서 안전성 확인을 할 수 없었던 수소버스 등 대형차 부품 용기에 대한 국내 시험도 가능해진다.

장성수 센터장은 “정부정책으로 2040년까지 수소충전소 1200여 기가 보급될 예정”이라면서 “큰 사고를 막아주는 대표적인 시설인 방호벽에 대한 실증시험·연구를 진행하고 방호기술을 축적해 수소충전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시설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