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다섯 명이 지난해 8월 한국전력공사와 다섯 개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기업에 기후 피해 책임을 직접 묻는 국내 첫 민사소송이다.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로 농작물 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 나온 소송이다.

원고 측 소송 대리를 맡은 김예니 기후솔루션 리걸팀 변호사는 "기업의 기후 피해 책임이 법적으로 인정되면 기업은 기후를 더 이상 평판 문제가 아니라 재무적·법적 리스크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염과 극한 호우가 만든 피해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그 질문이 법정으로 넘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예니 - 기후솔루션 리걸팀 변호사, 연세대 정치외교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현 기후연구포럼 회원, 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사진 기후솔루션

국내에서 온실가스 배출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묻는 첫 민사소송이다. 준비하며 가장 먼저 넘어야 했던 벽은 무엇이었나.

"피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기후 위기로 농업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별 농가가 매년 어떤 피해를 보는지 소송을 염두에 두고 기록하거나 증거를 축적해 오지는 않는다. 개별 농가 피해를 파악하고 입증할 자료를 수집·정리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기후 소송이라 하면, 보통 정부를 상대로 한 헌법 소원을 떠올린다. 이번에는 기업을 피고로 삼았다. 상대를 바꾸는 것은 법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 건가.

"법적 근거가 달라진다. 헌법 소원은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공권력을 상대로 헌법에 근거해 제기하는 절차다. 반면 이번 소송은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이므로 민법이 적용되고, 구체적으로는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책임이 근거다.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기후변화로 발생한 손해에 민사상 배상 책임을 지는지를 판단받는 사건인 것이 기존 헌법 소원과 다른 점이다."

소송에 이르기까지 만난 농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상기후 피해를 현장에서 직접 봤을 텐데, 통계나 손해액과 함께 실제 피해를 예시로 든다면.

"사과 농가 원고는 사과꽃이 처음 핀 날을 해마다 기록해 왔다. 영농을 승계한 2011년에는 4월 말에서 5월 초에 꽃이 폈는데, 겨울이 짧고 따뜻해지면서 15년 사이 개화가 열흘에서 2주 앞당겨졌다. 가장 이른 해는 4월 8일이었다. 4월 초는 아직 꽃샘추위와 서리 위험이 남은 시기다. 2019년 냉해 때 착과 수는 평년 22만8237개에서 10만3682개로 54.6% 줄었고, 생산량도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산청의 딸기 농가 원고는 2025년 7월 폭우로 하우스가 침수됐다. 수로가 범람해 7월 19일 오전 수위가 어깨높이까지 찼고 모종판과 기계가 잠겼다. 7월 17일 산청의 하루 강수량은 289.2㎜였다. 9월에 쓸 모종 1만3000주를 다시 사느라 1040만~1170만원이 들었지만, 모종은 보험 보상 대상이 아니다. 딸기는 9월에 정식해 이듬해 5월까지 수확하므로 피해는 2026년 출하 실적에 나타난다. 현재 출하 실적은 지난해의 60% 수준이다."

소송의 가장 어려운 관문은 인과관계 입증일 텐데.

"세 단계로 나눠 입증하고 있다. 1단계는피고의 배출로 기후변화가 얼마나 악화했는지, 2단계는 그 기후변화로 원고에게 피해를 준 기후 재난이 발생했는지, 3단계는 그 기후변화와 기후 재난으로 실제 원고에게 피해가 발생했는지다. 각 단계의 인과관계는 최근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이고, 일부는 이미 방법론이 상당히 축적돼 있다."

농업 손실 기여액 등 과학적 추정치가 법정에서 증거로 받아들여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과학과 법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배출량이 얼마나 피해를 발생시키는지를 과학이 밝히면 법원이 이를 법적으로 평가한다.한전의 배출량은 배출권거래제(ETS)에 따라 피고가 직접 보고한 공식 자료로 확인된다. '네이처' 연구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 세계 폭염 경제 손실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정량적으로 추정하는 방법론을 제시했고, 배출량이 확인되면 이를 적용해 손실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방법론의 신뢰성과 검증 여부다. 기후 헌법 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를 판단 근거가 되는 '과학적 사실'로 인정한 바 있다."

/사진 셔터스톡

피고 측에서 전력 생산은 국가가 부여한 공적 임무이고 배출은 적법한 인허가 아래 이뤄졌다는 반론이 나올 법한데.

"실제로 피고가 그렇게 반론했다. 그러나 인허가는 공법상 관계를 규율할 뿐 사법상 책임까지 면제하지는 않는다. 독일 전력 회사 RWE 사건에서도 피고는 국가 허가를 받아 적법하게 발전소를 운용했다고 주장했지만, 독일 법원은 행정적 허가가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같은 사법상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법상 허가가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된다는 '백지위임장'이 될 수는 없다. 전력을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지는 결국 피고의 경영상 선택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데도 화력발전에 의존해 온 것 역시 선택이다."

해외에서는 페루 농민이 독일 RWE를 상대로 낸 소송 등 유사한 사건이 이어져 왔다. 한국 법원의 조건이 그들과 다른 지점은 무엇인가.

"페루 농민이 RWE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판결이 준비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가 됐다. 네덜란드에서 셸을 상대로 다배출기업의 기후 위기 대응 의무를 정면으로 다룬 사건도 참고했다. 두 사건 모두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계에서 기업의 기후 피해 책임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만장일치로 낸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도 참고했다. 다만 한국은 관련 판례와 논의가 덜 축적돼 있다. 유럽에서는 수백 건, 미국에서는 2025년 한 해에만 100건이 넘는 기후 소송이 제기됐다. 우리는 한국법원이 처음 판단해야 할 쟁점이 많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이 소송에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기업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기업은 기후를 더 이상 평판 문제가 아니라 재무적·법적 리스크로 관리해야 한다. 공시도 달라진다. 탄소 중립을 선언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감축 계획과 이행 여부를 정확히 설명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그린워싱이나 허위 공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투자자와 금융기관도 이 법적 리스크를 반영하기 시작할 것이다. 기후 리스크가 큰 기업은 보험료나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고, 실제 감축을 추진하는 기업은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기후 대응이 그때그때 부담하는 비용이 아니라 사전에 관리해야 할 핵심 경영 리스크가 되는 것이다."

이 소송이 몇 년 뒤 어떤 판결로 남기를 바라나.

"기후 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사법부에 제대로 전달되고, 취약계층을 보호할 법리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 피해에 대한 기업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이 자리 잡는 데 이번 소송 판결이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