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캠퍼스./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오는 21일부터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실제 반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파업에 돌입할 경우 회사의 브랜드 파워에 타격이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노조의 주장대로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JP모건 등 국내외 투자은행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일부 생산라인의 '셧다운'을 가정해 조 단위의 매출·영업이익 타격을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현장 직군에서는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 속도 등 생산 속도에 일정 부분 영향이 있을 수 있어도 가동 중단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공정은 일반 제조업처럼 조립라인 일부를 멈춰 생산 차질을 내는 구조가 아니다. 수백 개 공정과 수천 대 장비, 자동화 물류, 가스·화학물질·초순수·전력 설비가 동시에 맞물려 가동되기 때문에 파업 효과를 내려면 사업장과 교대조, 직무별 참여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DS부문 관계자는 "메모리 팹은 자동화율이 높아 단순 결근자 수보다 생산 공정에 병목 현상을 일으켜야만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교대 오퍼레이터, 설비 대응, AMHS(자동반송시스템)·웨이퍼 이송, 공정 모니터링, 테스트·패키징 인력이 특정 시간대에 동시에 이탈해야 생산 속도가 의미 있게 저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4년 삼성전자 반도체 파업 당시 생산 타격이 제한적이었던 배경에도 낮은 파업 참여율과 함께 이 같은 구조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적 제약도 노조의 선택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유독 가스를 비롯한 화학물질 등 환경·안전과 관련한 법적 규제가 촘촘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생산 차질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파업 참여 인원의 배치를 선별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특수가스·화학물질·배기·초순수·전력·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은 파업 중에도 법적으로 유지 의무가 있어, 노조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파업을 단행하려면 수백 개 공정을 파악하고 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조직 체계가 요구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파업이 장기화해 생산 라인에 차질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매출·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해외 시장조사업체의 한 관계자는 "웨이퍼 투입 기준으로 메모리 생산 감속률을 최대 5% 수준으로 가정해도 분기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전체 매출액(23조원) 중 1조원 미만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생산 속도가 느려질 경우 D램·낸드플래시의 평균판매단가(ASP) 상승으로 이어져 매출과 영업이익이 오히려 개선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요 고객사들이 D램, 낸드를 급하게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얘기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정부의 공권력 개입이 노조를 압박하는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시기에 세계 1위 메모리 기업의 생산 차질 우려가 'K반도체 위기론'으로 번지면서, 정치권과 정부 모두 대화 촉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사후조정 절차를 가동해 노사 중재에 나선 상태이며, 사측도 법원에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수원지방법원이 파업 개시 전 결론을 낼 예정이다.

사후조정마저 결렬될 경우 노동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고용노동부 장관 권한인 '긴급조정권' 발동에 나설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긴급조정권은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발동할 수 있는 제도로, 발동 즉시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된다. 정부는 현재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파업이 실제로 시작될 경우 이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보다 본질적인 우려는 재무적 타격보다 대외 신뢰도 손상에 있다. 삼성전자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고용량 서버 D램, 기업용 SSD 등 AI 인프라용 고부가 제품의 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설령 생산 차질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글로벌 고객사가 납기 불확실성을 우려할 경우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으로 일부 물량이 이동하는 반사이익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공정 검증과 고객사 인증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한 번 이탈한 고객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