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챗GPT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이 2000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인공지능(AI) 서비스 확산에 따른 수요 증가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시장 확대의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인상에 맞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AI 인프라 투자 규모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현재 구가하고 있는 수퍼 사이클(초호황기)의 규모와 기간이 전례 없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옴디아는 지난달 2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반도체 시장의 매출 규모가 전년 대비 62.7% 증가해 약 1조3500억달러(약 1994조원)를 형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옴디아는 지난 1월 올해 반도체 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으로 '사상 첫 1조달러(약 1477조원)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성장률 전망치(30.7%)를 다시 기존 대비 32%포인트(P) 올려잡았다.

옴디아는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배경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확대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에 따른 공급 부족 심화가 메모리 반도체 전반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시장 규모가 대폭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옴디아는 구체적으로 작년 대비 올해 D램 시장이 2배, 낸드플래시 시장은 4배 정도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

이번에 상향 조정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올해 매출 규모 전망치는 기존(약 4200억달러) 대비 2500억달러 높아진 6700억달러(약 990조원) 수준이다. 작년과 비교해 200% 성장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옴디아는 "주요 기업이 가격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전반에 공급 제약이 심화하고 있다"며 "데이터센터의 강력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계속되고 있어, 의미 있는 공급 완화는 2027년 들어서도 한동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시장의 매출 성장은 출하량 증가보다는 평균판매가격(ASP) 상승에 따른 것"이라며 "과거 가상자산 채굴 등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서도 시장 확대는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범위·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반도체 분야별 2026년 매출 전망치와 전년 대비 성장률 예상./옴디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16.00달러로, 전월(13.00달러)보다 23.08% 올랐다. 작년 4월 1.65달러와 비교하면 1년 사이 10배 정도 가격이 오른 것이다.

메모리카드·USB용 낸드 범용 제품(128Gb 16Gx8 MLC)의 4월 평균 고정거래가격도 24.16달러로, 전월(17.73달러) 대비 36.29% 급등했다. 16개월 연속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2분기 계약 가격이 직전 분기보다 범용 D램은 58~63%, 낸드는 70~7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범용 메모리 제품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주요 공급사가 HBM과 서버용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생산 능력을 우선 배분한 영향이 크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과 메모리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미국 빅테크의 자본지출(CAPEX) 규모도 커지고 있다. AI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고객사인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MS)·메타·아마존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AI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자본지출을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빅테크의 올해 자본지출 전망치 합산액은 최대 7250억달러(약 1071조원)로 집계됐다. 작년 4100억달러(약 606조원)에서 큰 폭으로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가격 인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옴디아는 "기업들이 AI와 데이터 분석 등 더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노후 서버 교체를 앞당기고 있다"며 "이 흐름이 하이퍼스케일러의 이례적인 자본지출, 부품 부족과 맞물리면서 평균 판매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물론 범용 메모리 가격도 오르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수익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올 1분기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매출은 8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53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1분기 메모리 사업에서 올린 매출은 74조8000억원이다. DS 부문은 크게 메모리·비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로 나뉜다. 삼성전자는 DS 부문의 사업부별 세부 영업이익 규모는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메모리 사업부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70~7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매출은 52조5763억원, 영업이익은 37조6103억원으로 영업이익률 72%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사업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와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비슷한 기간 엔비디아(65%), TSMC(58%) 실적과 비교해 높다. 경쟁사인 마이크론(68%)보다 우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공급사 우위' 구조가 현재 시장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시장 상황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