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 리스크로 글로벌 금융 시장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국내 증시에서는 전혀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한 달간 시장 수익률 상위권을 장악한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광통신주였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17일 열린 'GTC 2026'에서 광학 기술과 실리콘 포토닉스를 차세대 AI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거론한 이후, 관련 종목에 투기성 자금과 성장 기대가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광통신 업체 이노인스트루먼트 주가는 지난달 17일 359원에서 이달 16일 3040원으로 746.8% 상승했습니다. 전날 장중 최고가인 5080원을 기준으로 하면 1315.3%나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광통신 관련 업체인 광전자는 2080원에서 1만2900원으로 520.2%, 우리로는 1635원에서 1만4200원으로 768.5%, 기가레인은 510원에서 2000원으로 292.2%, 빛과전자는 1541원에서 4510원으로 192.7%, 대한광통신은 7220원에서 1만5020원으로 108% 각각 올랐습니다. 모두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두 자릿수는 물론 세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셈입니다.
이 같은 급등세의 배경에는 AI 인프라 구조 변화가 있습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안에 연결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제는 반도체 성능 못지않게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고받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엔비디아 역시 실리콘 포토닉스를 통해 초대형 AI 인프라를 더 빠르고 에너지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칩 자체에서 칩을 잇는 네트워크와 광인터커넥트 영역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특히 시장이 주목한 것은 단순한 '광섬유'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내부 연결 구조의 변화입니다. 기존에는 서버와 스위치, 칩과 칩을 잇는 과정에서 전기신호 기반 연결이 주를 이뤘지만, GPU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발열과 전력 소모, 전송 지연이 함께 커지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데이터를 빛으로 전달하는 광학 기술이 차세대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광트랜시버, 광케이블, 실리콘 포토닉스, 코패키지드 옵틱스(CPO) 같은 기술이 AI 인프라 투자 확대의 직접 수혜 영역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에서도 이런 기대가 빠르게 번지면서 관련 부품, 장비, 모듈 업체들까지 한꺼번에 묶여 재평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급등 뒤 변동성 확대 조짐도 뚜렷합니다. 이달 16일 하루에만 이노인스트루먼트는 전일 대비 29.95% 하락했고, 광전자는 27.45%, 기가레인은 29.95%, 빛과전자는 29.42%, 대한광통신은 24.14% 각각 급락했습니다. 기대가 먼저 주가를 끌어올린 만큼, 실적이나 실제 수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시장의 시선은 이제 '광통신'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실제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AI 데이터센터와의 실질적 연관성, 핵심 광부품과 장비 기술력, 글로벌 빅테크 공급망 진입 여부가 향후 옥석 가리기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이번 랠리가 단순한 테마 장세를 넘어 AI 시대 인프라 재편의 신호탄일 수는 있지만, 현재 국면은 기대와 과열이 뒤섞인 초기 단계에 가깝습니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광통신이 AI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큰 흐름 자체는 맞지만, 모든 관련주가 같은 수혜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실제 고객사와 공급망, 양산 능력, 수익성으로 연결되는 기업과 단순 테마에 편승한 기업의 차이가 곧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