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달리

이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MWC 2026(이하 MWC)'을 계기로 6G(6세대 이동통신) 전선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아직 표준이 정립되지 않은 시점인데도 글로벌 기업들이 먼저 연합을 짜고 아키텍처의 기본값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졌습니다. 5G(5세대 이동통신) 시기에 한국이 '세계 최초 상용화'로 시장의 첫 깃발을 꽂았다면, 6G에서는 '누가 판을 그리느냐'의 싸움이 더 앞단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판의 중심에 엔비디아와 퀄컴 같은 미국 빅테크가 서 있고, 한국 기업들은 '참여'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 미국 빅테크가 주도하는 6G 연합

7일 업계에 따르면 MWC 2026에서 엔비디아와 퀄컴이 각각 6G 연합 출범을 알리며 세력 결집에 나섰습니다. 엔비디아 6G 연합에는 한국 SK텔레콤, 영국 BT그룹, 독일 도이치텔레콤, 미국 T모바일, 일본 소프트뱅크 등 주요 통신사와 시스코, 에릭슨, 노키아 등 통신 장비 업체들이 참여했습니다. 엔비디아는 6G가 자율주행 차량과 센서, 로봇 등을 연결하는 '피지컬 AI'의 근간이 될 것으로 보고 연합체를 구성했습니다. 차세대 무선 네트워크 인프라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전환하고 인공지능(AI)을 통신 네트워크 전반에 적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물인터넷 업체와 정보기술(IT) 디바이스 업체들은 퀄컴 중심의 '6G 연합'으로 모였습니다. 이 연합에는 커넥티드 모빌리티, 이동통신, 사물인터넷 기기, 모바일 기기 등 글로벌 기업 30여 곳이 집결했습니다. 한국에선 LG전자와 통신 3사가 참여했습니다. AI 기반 6G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기기와 데이터 서비스, 항공과 지상 교통관리 서비스 등을 연구 개발할 계획입니다. 퀄컴은 6G 연합과 함께 2029년까지 6G 상용 시스템 구현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도 제시했습니다.

◇ 공급 측 엔비디아 vs 수요 측 퀄컴, 표준화 전쟁의 선제 포석

이번 국면을 상징하는 장면은 '엔비디아 연합'과 '퀄컴 연합'의 분화입니다. 통신사와 통신 인프라 업체들은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모였고,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 IT 기기 업체들은 퀄컴을 중심으로 헤쳐모였습니다. 양 진영은 6G를 사람 간 통신의 연장이 아니라 자율 기기와 센서, 로봇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피지컬 AI' 인프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는 닮았습니다. 다만 주도권을 잡는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엔비디아는 통신망을 공급하는 통신사와 장비사를 묶어 '망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 합니다. AI 무선접속망(AI-RAN)과 네트워크 자동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통신 인프라를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컴퓨팅으로 재구성하겠다는 구상에 가깝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AI는 컴퓨팅을 재정의하고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 구축을 주도하고 있고, 그다음 차례는 통신"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퀄컴은 망을 소비하는 디바이스와 서비스 생태계를 결집해 '수요와 사용처'를 선점하려 합니다. 단말과 모빌리티, 사물인터넷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가 결국 칩셋과 표준 요구사항으로 되돌아온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표준이 완성되기도 전에 연합을 통해 유리한 전장을 먼저 만들려는 흐름이 한층 노골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한국의 숙제, '참여'에서 '기여 지분 확보'로

이 대목에서 한국의 고민이 커집니다. 엔비디아의 6G 연합에는 국내 통신사 가운데 SK텔레콤만 들어갔고, 퀄컴 연합에는 통신 3사가 모두 참여하는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참여 폭이 넓어졌다고 안심할 일은 아닙니다. 동맹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기술 표준과 6G 생태계에서 '기여 지분'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6G의 승부처로 꼽히는 AI-RAN과 네트워크 자동화 소프트웨어, 통신과 센싱 결합(ISAC), 비지상망(NTN) 연동, 에너지 효율이 '한국이 제안하는 기본값'으로 들어가려면 레퍼런스 구현과 검증 체계를 우리가 먼저 쥐어야 합니다. 실증 데이터와 운영 경험이 없는 표준 제안은 협상의 장에서 힘을 잃기 마련입니다.

정부는 2030년 6G 상용화와 2028년 LA 올림픽 연계 시범서비스를 제시하며 '하이퍼 AI 네트워크 전략'을 내걸었습니다. 6G 기반 AI-RAN을 산업과 서비스 거점에 500개 이상 구축하겠다는 목표와 시장 점유율 20%, 표준특허 30% 선점 같은 수치 목표도 제시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다만 실행의 밀도는 더 묻고 따져야 합니다. 2026년 네트워크 기술개발부터 실증과 사업화에 29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하면서도, 6G R&D 트랙의 핵심으로 제시된 '차세대네트워크(6G) 산업기술개발'에 배정된 예산은 1068억원에 그쳤습니다. AI에 10조원 규모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구상과 비교하면, AI 인프라의 바닥판인 6G 투자 우선순위가 낮아 보인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는 "AI 발판인 통신 인프라에 대한 투자 필요성이 크지만 실제 투자는 그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를 갖춘 한국은 AI 인프라 부문에서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는 데 강점이 있다. 글로벌 빅테크 연합에 참여하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주축이 된 6G 연합 조성도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6G 구축으로 인한 사업 수익화 모델에 대한 고민도 선행돼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6G는 '통신 세대교체'가 아니라 AI 경쟁의 운영체제입니다. 누가 AI-RAN의 자동화 스택을 사실상 표준으로 만들고, 센싱 결합(ISAC)과 비지상망(NTN) 연동을 상용 망에서 검증해 신뢰를 쌓느냐에 따라 한국은 다시 선도자가 될 수도, 완성품을 사 오는 추격자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동맹은 함께 타고 가는 배가 아니라 지분을 놓고 경쟁하는 장"이라며 "한국이 5G의 경험을 6G의 실력으로 바꾸려면 동맹 참여보다 (표준 마련에) 기여를 증명하는 국가 단위 테스트베드와 공개 레퍼런스 스택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6G는 한국이 편승하는 기술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조언했습니다.